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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단상) 드루킹과 피해자화의 문제

by 비내리는날 2018. 4. 21.

 이전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오늘날 유일하게 '허락된' 발언권은 '피해자'로서의 발언에만 부여된다. 억울함, 수동성 등을 속성으로 하는 그러한 발언의 특징은 공감과 파급력을 가지지만, 기존의 권력구도를 흔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건이고 스캔들이기는 하나 전복적이거나 혁명적이지 않다. 


 아직 제대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친정부'를 내세우면서도 정권을 공격하는 댓글을 작성했다는 '드루킹'과 그 추종(집단은 그러한 구도를 이용하려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스스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과 그 지지자인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댓글을 작성하고 그런 여론(?)을 퍼뜨림으로서 스스로를 피해자화한 것이다. 수동적 피해자의 표상만을 허용하는 구조 속에서 일종의 도착()으로서 자신이 지지하는 것을 비난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는게 내 추측이다.


 굳이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수많은 다른 '정권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에 노조, 시민단체 등을 넣는다. 실제로는 정부 여당의 방조와 세상의 무관심, 반노동 풍조로 위기에 놓인 제조업 노동자들은 죽어나가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해결이 요원해보인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노조를 강자로,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하고 그들의 자기표현을 공격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지지자를 모으고 피해자성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이는 정권 지지자 뿐만이 아니다. 일베도 그랬고, 심지어는 좌파 조직들이 그러한 감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피해자와 발언권,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누구나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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