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적 글쓰기

직무급제가 아니라,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에 반대한다.

by YH51 2022. 10. 5.

직무급제가 아니라,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에 반대한다.

직무급제 논의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쉬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증세, 초과이익공유 등 오랜 세월 주장해오던 것들이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니, 임금체계와 같은 새로운 이슈로 돌파해보자는 생각인지, 중도·합리노선을 취해서 중도세력을 포섭해보자는 전략인지 모르겠으나 보다 원칙적인 이야기들이 소멸하는 느낌이다.

직무급제는 임금체계지만 직무급제의 파장은 임금에만 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직무급제 VS 호봉제>를 놓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 VS 연공 중심의 인사체계>이다. 직무급제 이야기를 임금체계 중심으로만 놓고 본다면 본질을 잃게 된다. 정부도 단순하게 직무급제 도입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내지, 직무, ‘능력’ 중심의 임금체계라고 말한다.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의 핵심은 일과 능력이다.(혹자는 연공급 중심의 인사체계를 사람중심,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를 일 중심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여기서 XX급 내지 XX 중심의 임금체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임금체계가 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무 중심 체계로의 변화는 노동자의 채용-운용-방출까지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이하 직무체계)에서의 인사 경로는 입사 이후 ‘유사 직무’로 승진 등의 경로를 거쳐 퇴사하는 경로이다. 가령 A직무로 입직하면 A과 사원 – A과 대리 – A과 차장 등의 과정을 거쳐 A과 관리자로 승진하는 코스이다. 예를 들어보면 경찰 중 지능범죄수사로 입직했다면 지능범죄과를 떠나지 않고 그 내에서 지속적으로 승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1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채용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나름 직무 중심 체계를 만들기 위해 NCS(국가직무능력표준) 등을 도입하였으나 사실상 제 2의 수능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직렬별 과목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공무원 시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 1차적으로 직무 중심의 채용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현재 채용되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근무자들에게 직무체계 도입할시, 기관이나 지자체 등에서 배정해준 직무를 바탕으로 임금을 설정한다고 하면 기피직무나 저평가 직무의 노동자들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설사 직무 중심으로 채용을 했는데, 해당 직무가 소멸되거나 대체된다면 고용 유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번째로 운용 중 승진과 성과 기준의 문제가 있다. 연공 중심에 승진에서 직무 중심으로의 승진으로 승진 제도가 변화할 것이다. 직무 중심의 승진이란 기본적으로 능력과 성과이다. 능력이야 자격증 등으로 퉁친다고 하더라도, 해당 직무의 성과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문제가 된다. 특히 공공부문에서의 성과란 무엇인가? 사기업처럼 재무적 기준이나 부가가치 창출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평가 기준도 문제가 된다. 직무체계를 위해서는 직무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직무평가는 해당 조직에 핵심 성과 창출 업무를 중심에 놓고 각 직무를 비교하거나, 특정 기준을 바탕으로 상대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인데 공공부문에서의 성과란 무엇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공공부문의 업무를 성과를 중심으로 나열할 수 있는가?

또한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에는 여러 전제 조건이 있다. 산별노조-산별교섭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사회안전망이다. 해당 직무에 합의된 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그 업무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한 회사에서 해당 직무가 소멸할 경우 이직시까지의 생계 보장 등이 필수적 전제이다. 이런 전제 조건이 없는 하에서 직무체계의 도입은 그나마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직종의 고용안정을 깨뜨릴 뿐이다. 시사인 전혜원 기자 등은 직무급 도입을 직무 중심 채용 등 전반적인 변화의 시작으로 삼자고 말한다. 하지만 조건의 변화가 선제되지 않는 직무급 도입은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자는 주장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직무에 따라 해당 업종, 사업장 내에서의 임금 차별하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사실 이 부분은 여전히 고민 중인 지점인데, 개인적인 판단으로 현재의 동일노동을 동일작업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 A회사에서의 B업무와 C회사에서의 B업무는 동일노동인가? 사실 지불능력과 별개로도 이는 다를 수 있다. 직무체계의 관점에서도 해당 직무가 그 회사에서 갖는 상대적 중요도가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동일노동을 동일산업종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해당 사업장의 기본급 테이블은 동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그리고 자꾸 같은 업무를 하는 신참 직원과 고참 직원에게 다른 임금을 주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왜 불공정한가?)
그리고 기업 규모나 지불 능력에 따른 급여 차이는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구조의 개편과 증세, 복지 등 사회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연공체계가 최고의 임금체계이고, 이를 무조건 사수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의 임금체계’를 만들자며 직무급제를 도입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고, 능력주의 중심의 인사체계로 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차라리 적정임금을 토론하자고 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다. 애초에 임금체계는 내부 공정성의 문제이다. 적정임금(임금수준)만 결정된다면 임금체계는 내부 구성원들이 논의하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직무체계 도입을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공공부문의 성과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현 윤석열 정부와 같이 재무적 관점으로 평가할 것인지, 공공성 강화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 생각해보자. 후자라면 직무 중심의 인사체계가 적절한 형태일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