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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글쓰기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by 비내리는날 2022. 3. 22.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용산 이전 주장은 당선 겨우 며칠만에 나라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이틀 전 열었던 기자회견은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이었다. 용산 이전 문제와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지적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기자회견 중에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윤석열 당선자가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강변한 부분이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투철한 유물론자였던 걸까? 아무튼 공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나와 견해가 일치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김에 공간에 대해 얘기해보자. 지금 윤석열 당선자가 거주하는 서초 아크로비스타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의 자리이다. 수백명이 생매장 당한 그 자리는 보상금 마련을 위해 팔리고 강남 한가운데 노른자 땅에는 추모시설 하나 남겨지지 않고 부유층의 거주지로 바뀌고 말았다. 공간이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인지 당선자는 후보자 시절에 산재 노동자가 희생된 자리에서 노동자의 탓을 했다. 보통 그렇게 '재수없는 땅'에는 괴담이 돌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망각의 흔적이다. 끔찍한 기억을 망각하고 남은 외상인 셈이다. 그러나 아크로비스타는 괴담이 돌기는 커녕 여전히 비싸고 인기있는 거주지이다. 그곳은 망각의 망각 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땅이다. 윤석열 당선자가 꼭 들어가고 싶다는 용산 국방부 부지는 어떤 공간인가. 임오군란 이후 실권자로 떠오른 위안스카이가 청의 간섭군을 주둔시켰던 자리였다. 그 자리는 곧 일본의 조선군 사령부 본부와 20사단 주둔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반환되기까지 오랜 시간 주둔해있었다. 요컨대, 용산기지 일대는 100년간 한반도를 종속시킨 제국의 군사력의 중심부였던 셈이다. 청와대가 당선자의 말마따나 제왕적 대통령의 공간이라면, 용산은 한반도에 대한 외세의 간섭과 군사적 종속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특별한 공간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을 가졌을거라고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가 풍수를 따르든 무속을 따르든 아니면 지극한 우연에 의해서든 의도에 대해 관심갖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에게 그런 의도적인 무지를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공간에 대한 인식을 얘기하고 싶다.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간 공간에 작은 추모비 하나 남기지 않고, 기억의 땅을 망각 속으로 몰아넣으며, 기껏 이루어지는 기억은 긍정적인 것들로만 덮어씌워지고 위압적인 상징물로 대체되는 그런 인식 말이다. 공간은 의식을 결정한다. 윤석열 당선자의 끔찍한 노동관, 생명경시, 자본중시의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가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와 공명하는 결과물이다. 이번 용산 이전 논란이 이제라도 공간과 기억의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성찰하게 될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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