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 어쩌구

장소의 기억: 학교의 추모비

by 비내리는날 2021. 1. 20.

 우리학교 학생이었다면 누구나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4강의동 앞의 낯선 기둥 두 개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한자로 흰 말뚝 위에 학과와 이름, 연도가 적혀있다. 이 두 말뚝은 학교를 다니던 어떤 두 학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중 하나에는 학생회 간부 수련회 도중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짤막한 설명이 담긴 표지석과 고인이 남긴 글이 남아있다. 학교의 언덕을 따라 5강의동으로 내려가 후문 방향으로 몸을 틀면, 이번에는 2004년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나온다. 이 표지석 역시 학우인 누군가를 추모하는 비석으로 보인다. 종종 비석 앞에는 꽃다발이 놓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 학교에 남은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계속 추모해준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궁금증을 자아내던 이 추모비들은 왁자지껄한 학교생활로 접어들면서 신입생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말뚝은 여전히 4강의동 앞을 지키고 있지만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위로 세상을 떠났는지 알려줄 수 있는 망자는 없다. 그저 우두커니 흔적만이 남아 망자들이 우리와 같이 경기대라는 학생사회에 속했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혹시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해보아도 그 말뚝이 누구의 말뚝인지 알려줄 단서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망자와 함께했던 기억을 물질적인 형태로라도 남기기 위해 애썼던 과거의 학우들은 무의미한 일을 했을 뿐일까. 우리는 응답할 수 없는 메시지를 받고 황당한 기분으로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걸까.

 

 추측을 해보았다. 아마도 90년대에 세워진 두 말뚝의 주인은 재학 중 불행히 세상을 떠났을 여러 학우들 중에서도 기념물을 남겨서 추모할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개인의 뛰어난 성품 때문인지, 혹은 그가 가졌을 위치 때문인지, 아니면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었을지 알 방법은 없다. 보통 한국에서 망자는 가족 곁에 묻히면서 가족의 계보 속으로 흘러들어가지만, 특별히 추모비를 세워 학교라는 장소 속에 망자를 남겼다는 것은 망자에게 혹은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학교라는 장소가 큰 의미를 가졌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도 4강의동이 인문대학의 주요 강의실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망자나 추모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기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눈에 잘 띄는 곳에, 가까이에 두고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5강의동의 추모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추모비의 형태가 흰 말뚝에서 검은 석재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시대와 소속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내가 가진 정보로는 더 이상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망자는 다시 깊은 침묵에 빠졌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추모비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쩌면 망자를 추모하고 기억했던 사람들은 죽은 이의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추모비는 계속 거기에 서 있고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다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하나의 우연성 - 그가 단지 우리처럼 여기에 속했었다는 사실, 하나의 필연성 - 우리도 그처럼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우리를 그 앞에 붙잡아놓는다. 그것은 망자들을 추모하고자 했던 이들에게도, 지나가면서 추모비를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공통적이다.

 

 거기에 특별난 의미는 없다. 다만, 나는 이 두 가지 사실 앞에서 우리가 겸손해지고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우리와 똑같이 이 학교에 속해 여기서 활동했고,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앞에서 말이다. 그들은 나름의 특별난 활동을 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언어로 전달될만한 무언가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했을 무언가가 우리가 이 학교에 속함으로써 전해졌을지 모른다. 혹은 그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무언가가 죽음으로 중단되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중단된 것은 추모비라는 질문으로 남았다. 질문이 열려있기 때문에 응답 역시 열려있다.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그 추모비들에 대답하면 된다. 그들의 삶을 추적하고 추측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고, 그들 중 한 명이 불행한 죽음으로 포기해야 했던 학생회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들이 즐겼어야 했을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것도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장소 속에 남겨진 이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