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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어쩌구

장례의 경험 - 보내드림과 회복의 시간

by 비내리는날 2020. 11. 9.

 11월 4일 오전 5시 45분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올 한해 계속 앓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장례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십대 중반이니만큼 나도 어리다곤 할 수 없지만, 장례절차나 과정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런 일은 보통 아빠가 도맡아서 해왔기 때문이다. 아빠의 부재가 절실히 느껴졌다. 이 짧은 글은 장례 기간 며칠동안 내가 겪고 느꼈던 것을 정리해서 적어본 것이다. 이렇게 해야 내가 느낀 것들을 잘 정리하고, 또 글을 적으면서 아빠를 기억하고 애도해주신 분들을 떠올리고 아빠를 떠나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가족의 죽음은 하나의 부재이자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우리 가족 같은 경우 보통은 '가장'의 역할을 하는 아빠의 부재였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더욱 컸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었다지만 살아있는 것과 떠나버린 것 사이의 간극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일상은 비일상으로 접어들었고 가족의 질서는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태에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상조회사의 상품을 구매하여 가족들은 번거롭지 않게 장례식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장례 중에는 여러 차례 제사를 올려야 한다. 상식이라 하여 살아있을 때처럼 식사를 올리고 예를 갖춘다. 이런 의례는 망자를 살아있을 때의 연장선상에 두어 생자와 사자라는 단절 사이를 매개해주는 역할로 보인다. 그리고 친지와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려 문상을 받기 시작한다.

 조문객들은 일정의 조의금을 가지고 찾아와 고인에게 향과 국화를 올리고 예를 표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조문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이러한 과정은 일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교환관계가 아니다. 조문객들은 추모의 의미로써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조의금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고인이 하는 마지막 대접으로 식사를 제공한다. 이런 관계는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증여를 통한 도덕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후 경조사에서 이에 대한 보답이 기대되지만 그것은 도덕적 의무이지 시장적인 교환관계라고 볼 수 없다.

 가족들은 장남, 차남, 형제, 자매 등의 순으로 서서 문상을 받고, 장남인 상주가 형식상으로 장례를 주도한다. 주로 친지, 지인으로 구성된 조문객들은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본래 가장이 가졌던 책임을 상주에게 넘겨준다. 고인의 죽음으로 부재하게된 기성의 가부장적 가족질서는 이 과정에서 회복된다. 책임을 맡은 상주는 장례를 주도하면서 장남의 의무를 지게 된다. 살아생전에는 사회적 존재로써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자기역할을 다한 고인은 죽어서는 서서히 질서의 대상 영역으로 옮겨간다. 장례의 마지막에는 부계 가족들이 묻힌 선산에 모셔져 고인의 역할은 가부장적 계보의 일부 속에 편입된다.

 비일상의 순간은 3일 간의 장례를 통해 점점 일상의 회복으로 향한다. 염습과 입관을 통해 고인을 관에 모시고 나면 정식으로 상복을 입고 향을 피우며 제사를 올린다. 점차 생자의 영역에서 사자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3일 간의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면 발인제를 지내고 발인을 해서 화장장으로 고인을 운구한다. 화장이 끝난 후에는 위에 말한 것처럼 선산에 유골함을 봉안하고 위령제를 지낸다.

 

 물론 장례를 겪으면서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의례를 통해서 가부장적 기존 사회의 질서가 관계 속에 재각인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의례 속에 주어진 배역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이상, 떠나보내기 위한 그때그때의 감정을 쉽사리 표현하기 어려웠다. 한편으로 상품화된 장례를 통해 죽음조차 평등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가족 같은 경우는 여유가 있었기에 충분한 예를 갖출 수 있었지만,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장례상품과 장례식장 비용은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가 3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기간을 지내는 것에는 사회적 존재로써 한 명의 인간의 육체적인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또 망자를 새로운 관계로 맞이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족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고인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점차 해소하며 망자를 보내드린다. 장례 이후에도 삼우제, 칠칠제, 사십구제를 통해서 계속 보냄과 받아들임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되면 일년에 한 번씩 졸일에 제사를 모시면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가는 길을 배웅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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