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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적 잡상

새로운 '평화'와 '안보'

by 비내리는날 2018. 10. 20.

 기나긴 군 생활도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주에 말년 병장을 위한 캠프를 다녀왔다. 캠프라고 해보았자 교육을 듣고 어디를 잠깐 다녀오고 수준이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걸 볼 수 있었다. 예전부터 공군은 육군에 비해 좀 더 첨단, 고급, 선진의 느낌을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이번 캠프 강연 중에서는 안보 강연도 있었는데, 이 강연에서는 전역한 전직 공군 장성이 '삶'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그 강연에서는 안보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나 적에 대한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모토는 우리 젊은 장병들의 행복한 삶이 안보라는 것이었다. 거의 귓등으로 듣고 조느라고 거의 듣지 못했지만, 대충 요지는 군 생활을 하나의 스토리로, 자신만의 것으로, 경험으로-사실은 상품으로-풀어낼 능력을 기르라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삼성전자 본사를 방문하여 기술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보여주었다. 사물인터넷, 최신 VR기술, 새로운 전자기기들, 기술들의 역사와 그 기술(그리고 기업들)과 함께 더 나아질 우리의 미래들... 이것이 평화 시대의 국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적대감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체제가 스스로 바뀌고 있다. 흉악한 적들 앞에서 국가를 지킨다는 서사는 인생의 유일무이한 경험이라는 서사로, 인생의 경험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외부와 체제를 바꾸기보다 스스로를 바꿔내고 더 좋은 상품으로 가꿔나가는 평화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변화되었다. 기술은 그러한 삶을 지탱해준다. 국방에서는 드론 기술과 각종 신무기가 도입되고 인간은 전쟁에서 피튀기는 역할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기술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인간은 노동을 기술에 외주를 주고 사물인터넷으로 그것을 운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일종의 삶의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이러한 미래는 마치 꿈 같다. 쓸모 없는 노동은 줄어들고, 삶은 윤택해지고, 어디서든 누군가와도 교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하는가? 새로운 평화와 안보는 경영자적 삶의 자세로부터 나오는가? 대체 가능한 인간 노동은 기술과의 경쟁 속에서 한없이 싼 것이 되버린다. 기술은 그 마법적인 힘으로 그 뒤에 담겨있는 인간 노동을 유령화시킨다. 여전히 수 많은 고급 전자 기기의 부품과 재료들은 소위 '제3세계'의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공급된다. 신기술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 많은 에너지는 고위험의 원자력 발전이나 지구를 착취하고 오염시키는 화석 연료로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평화는 현란한 기술과 경영자 이데올로기의 장막으로 불만, 불안, 고통을 덮어놓은 '위장평화'가 아닐까.

 화려한 기술도, 윤택한 삶도 좋다. 공포로 유지되던 평화와 안보보다는 이쪽이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나에게 평화란 제 것이 제 이름과 제 값을 갖는 무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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