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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적 잡상

군필자들은 '배신'했는가?

by 비내리는날 2018. 2. 20.

 최근 군복무 기간 단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오프라인 상에서 너무나 낯익은 논란이 일었다. 군필자들을 중심으로 군복무 기간이 단축되어서는 안된다 반대론이 나오는가 하면 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한 억울함과 분노를 표하는 사람들, 복무 숙련도와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언급하며 어떻게든 반대 이유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것을 단지 내로남불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인간 사회의 좋지 않은 본성 문제로만 있을까.

 

 군복무 기간 단축을 비롯한 개혁을 추동하는 이유들 하나는 군필자들이 징병제의 불합리함과 군생활의 폭력성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복무를 하지 않는 여성들을 질시하고 육해공군에서 복무하지 못하는 공익근무자나 면제자를 이등국민 취급하며 병역거부자를 강력하게 비난한다. 이들은 자신을 사회의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사회적 공감대와 발언권을 얻는다. 많은 이들, 심지어는 가족을 군에 보낸 사람들이나 여성들도 군복무를 둘러싼 군필자들의 인식을 공유한다. 이들은 ' 문제' 해결하기보다는 피해자로서 얻는 동정과 사회적인 관심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군대를 싫어하면서도 그로 인한 이득(?) 취하고 해결을 미루는 일종의 도착(倒錯)적 상태인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도착적 전략을 취하는 것은 오늘날 유일하게 허용된 약자로서의 발언권이 '피해자되기'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동성, 피해자성, 무능력함으로 묘사하고 연민과 동정을 유발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지난 세기 폭력과 학살들, 전쟁의 결과물로서 모든 폭력적 자기 표현, 혁명적 쟁취는 다른 폭력들과 함께 금지되어버렸다. 이제는 수동적으로 인정받는 것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자기표현이다. 수저계급론이 보여주듯이 적대의 전선은 가시적이지만, 적대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의 전시로서만 '흙수저'로서의 표현이 가능하다. 이제는 어떤 피해자적 상태는 벗어나거나 극복되거나 부숴져야할 상태가 아니라 약자들이 사회에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쟁취되어야하는, 즉 스스로 고통받는 상태를 유지시키고 드러내야하는 하나의 자리이다.


 청년세대들이 얻을 수 있는 피해자로서의 자리 중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폭넓게 얻을 수 있는 자리는 군대다. 군대 문제를 해결해서 피해자로서의 자리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이들의 요구의 일면 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나는 피해자다'라고 사회에 외치고 인정받는 것, 사회적 발언권이다. 그러나 이렇게 '쟁취'한 사회적 발언권은 고통을 유지해야 자신이 고통받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도착적 상태는 결국 그 구조를 부숴야 해결 가능하다.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지배집단에, 강자에게 강요할 수 있어야, '폭력'의 권리가 있어야, 도착적 상태를 만들어내는 지배적 구조를 깨고 스스로 발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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