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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적 잡상

단상) 환대의 조건들

by 비내리는날 2018. 7. 14.

 나는 모 비행단에서 헌병대대 소속으로 제초를 하고 있다. 지난 주의 한창 더운날 뙤약볕 아래서 제초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 운전병과 함께 언덕 아래 있는 타 대대 사무실을 찾아갔다. 친절하게도 사무실의 장병들은 휴지를 주고 다른 제초인원들이 마실 물과 얼음도 제공해주었다. 그들의 환대 덕분에 맨몸으로 찾아간 우리는 시원한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그 이전 달에 헌병대대는 타 대대로부터 신고를 당해 머리검사를 비롯한 엄격한 생활점검을 받았다. 사실 헌병대대는 부대 내의 다른 대대들에게 공공연히 적대시되는데, 헌병대대 내의 정문초병과 일부 병사들에게 다른 병사·간부를 제지하고 잡고, 반입할 물품을 검사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늘 갈등의 원인이 되어 타 대대로부터 헌병대대를 신고하는 일이 종종있어왔다. 나와 동료들 역시 헌병대대의 일원으로 생활점검을 받아 고생을 했었다.


 만약 우리가 풀과 흙이 잔뜩 묻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내려온 제초인원이 아니라 헌병대대의 일원으로서 사무실을 찾아갔더라도 그런 친절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우리가 '전우'가 아니라 타 부대나 민간인으로서 고생을 하고 있더라도 그러한 환대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결국 환대/적대의 조건은 어떤 공동체에 대한 소속이나 동일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대안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일까. 분명히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 혹은 조건들과 완전히 결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 자체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환대를 조건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갈등들 속에서, 차이 속에서, 혹은 의심들 속에서도 환대를 통해 어떤 긍정적 교류의 시발점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환대의 조건을 생각하기 전에 무조건적 환대를 통해 어떤 이해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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