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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7

무제 무제 8개월 정도를 준비한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동안 나의 모든 것들을 여기에 집중해왔다. 8개월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기억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미화되고 있다. 뭐, 결과 역시 나쁘지만은 않다. 일이 끝나니 집중할 것을 잃었다. 수능이 끝난 고3 때처럼 나는 갑자기 늘어나버린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정말로 하루하루가 아무 일도 없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휴식이라는 것은 누군가는 몰아서 취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틈틈이 쉬는 것에 오히려 편함을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이 시간이 무료하고, 힘든 것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일 것이다. 2018. 6. 17.
단상) 드루킹과 피해자화의 문제 이전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오늘날 유일하게 '허락된' 발언권은 '피해자'로서의 발언에만 부여된다. 억울함, 수동성 등을 속성으로 하는 그러한 발언의 특징은 공감과 파급력을 가지지만, 기존의 권력구도를 흔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건이고 스캔들이기는 하나 전복적이거나 혁명적이지 않다. 아직 제대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친정부'를 내세우면서도 정권을 공격하는 댓글을 작성했다는 '드루킹'과 그 추종(집단은 그러한 구도를 이용하려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스스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과 그 지지자인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댓글을 작성하고 그런 여론(?)을 퍼뜨림으로서 스스로를 피해자화한 것이다. 수동적 피해자의 표상만을 허용하는 구조 속에서 일종의 도착(倒錯)으로서 자신이 지.. 2018. 4. 21.
(번역) 하라하라토케이(腹腹時計) 서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60년대 격렬했던 일본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1970년 봄 호세이 대학교 법학부의 다이도지 마사시(大道寺 将司)가 조직한 'L클래스 투쟁위원회'라는 논섹트 래디컬 그룹으로부터 나왔다. 이 투쟁위원회의 멤버를 중심으로 '연구회'가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일본이 행한 아시아 등지에서의 침략과 각종 악행을 학습했다. 1970년 7월 7일, 화교청년들이 구성한 화교청년투쟁위원회가 실은 차별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던 신좌파 학생들을 비판하면서 당시 학생운동에서는 소위 '7·7시프트'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재일조선인인 박경식의 『조선인 강제 연행의 기록』 등을 교재로 사용하여 학습했다. 이 그룹을 중심으로 1972년 12월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반.. 2018.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