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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리뷰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by YH51 2021. 10. 1.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김금희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이 말을 하면 나를 오래 보아왔던 지인들의 반응은 “너가?”이다. 이해가는 반응이다. 3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고, 읽더라도 거시적인 배경들을 가진 글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선배를 만나러 대전에 갔다. 거기서 “다다르다”라는 독립서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 『덕질 아카이빙』이라는 책이었다. 여러 작가들을 글을 아카이빙한 것 같았는데, 김금희편도 눈에 보였다. 그 책 안에는 모의고사 시험지도 있었는데, 작가에 관한 시험지였다. 가장 한국다운 덕질 같았다.

 이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 책의 제목이자, 단편 중 하나인 우리는 「페퍼로니에 왔어」는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이 책을 샀는데, 얼마 후 서점에서 ‘김금희 작품이 실렸다고?’하며 2020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샀다. 같은 단편을 단행본(?)으로 한권을 사고, 수상작품집으로 또 한권을 사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같이 엮여 있지만)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배경이 익숙했다. 20살이 되어 집을 떠나 대학에 오게 된 후, 가장 처음 1년 정도를 살았던 곳이 일산이었다. 그래서 공간적인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도열해있는 콘크리트 아파트들의 색감, 사이사이에 꽤 높은 나무들이 서있는 공원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경’하지 않았다면 이 느낌을 더 생생하게 받지 못했겠구나. 수도권 신도시의 정서, 광역버스 등. 읽고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소설이나 에세이의 공간이 한정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양적으로 계량해본 것은 아니고, 단순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수도권 중심성이 강해진 만큼, 여러 작품들의 공간도 그렇게 변해온 것 같다. 강릉선 KTX가 개통하고, 제주도로 가는 항공편이 많아진 만큼 특수한 공간으로서 강원도 해안가, 제주가 등장하고 있는 것 같지만, 보편의 공간은 수도권이다. 단순한 느낌이다.

 분절 혹은 이별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란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결속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보낸 시간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꽤 오랜 기간을 내가 속했던 우리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들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이기성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싸움은 항상 존재한다. 맑스는 인류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싸움, 갈등, 투쟁은 개인 혼자 오롯이 감내해야하는 인고의 시간이다. 하지만 가끔 맘씨 좋은(?) 간섭자들 덕분에 연대자 혹은 외부세력 등으로 불리는 적극적인지지자를 얻기도 한다.

 연대자의 힘은 크다. 다른 것들은 차지하더라도 혼자 겪어야하는 고통, 당혹감 등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립감을 많이 해소시켜준다. 많은 싸움의 현장에서, 싸움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공감과 지지가 얼마나 한 인간의 고립감을 줄여주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연대자로서 어떤 현안이나, 투쟁에 연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같은 고민을 직면한다. 당사자가 아닌, 연대자로서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현안을 접할수록 나의 연대자로서의 역할은 점점 소극적이게 되었다.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관료적으로 변하였다. 나의 연대자로서의 기본적인 원칙은 “적극적으로 논의하되 당사자의 주체적 결정을 존중한다”지만, 가끔 이는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책임 때문이다. 내가 하자고 해서, 내가 이 방향으로 추진하자고해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책임 말이다. 혹자는 연대자도 당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연대자는 말 그대로 연대자이다. 당사자의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다만 최대한 비슷한 시각에서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연대자로서의 부담과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과거 엄혹했던 시기에 많은 학생운동가들이 노동 현장으로 향했다. ‘위장취업’이다.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현장에서 함께 싸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곳을 떠나기도 했다. 요즘에는 듣기 힘든 말이지만 ‘학출’이라는 말이 있었다. 학생운동 출신이라는 의미인데, 출신을 표기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발언은 과격하게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못하는”, “현장에서 투쟁이 장기화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현장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돌아갈 곳”이 있거나, 혹은 “다른 선택지”가 있는 학출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투쟁이 끝나도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원칙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고, 한 마디와 행동 하나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지금 네가 이렇게 문제를 키우는건 우리를 위험으로 모는 거야. 너는 유학생활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해.” P.116

 

 

 일본 사회에서의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유키코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미 재일조선인으로 일본 땅에서 자라온 유키코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낙인은 자신의 경로에 큰 걸림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정세 속에서는 생존을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키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배추 심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누군가 밭을 망쳐도 다음날 다시 모종과 삽을 들고 유키코는 배추 심기에 나섰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대한문 쌍용자동차지부 농성장에서

 문득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동료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세운 대한문 농성장에서 본 문구이다. 연대자가 무엇을 고민하든 당사자들은 꾸준히 살아왔다. 수동적 의미에서 살아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숨죽여있기도, 몸부림치기도 했다. 당사자의 삶의 무거움을 알기에 연대자도 책임을 고민한다. (무거움을 안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지만) 상황별로 다르고, 사안별로 다르다는 쉬운 말도 있지만  투쟁 당자자와 연대자의 관계, 역할에 대한 고민은 답이 없는 고민임을 안다. 그럼에도 이 고민을 하는 것은 서로 함께 하기 위함이다. 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끝까지 함께" 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끝은 무엇이며, 함께는 무엇인가하는 고민들이다. 여튼 확실한 것은 하나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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