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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적 잡상8

'군 인권'이 향해야 하는 것 오늘 날, 군 인권의 존재가치 자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민주화 이후 군대 역시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받았고, 다른 집단들에 비해 매우 느리지만 어느 정도 군 인권이라는 것이 자리잡게 되었다(물론 그 과정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우리는 2010년대에도 벌어졌던 끔찍한 군내 폭력에 의해 살해사건, 총기 난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꽤 큰 부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에는 전문상담관이 존재한다. 화장실마다 인권침해 등을 신고하는 번호가 붙어있고, 상급부대부터 하급부대까지 신고체계가 자리잡혀있다. 실제로 다소의 평판(?)만 내려놓는다면, '이런 것까지?' 싶은 정도의 인권침해도 신고, 처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권 군대'에서 살게 된 것일까?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군 인권.. 2017. 12. 22.
왜 도망치지 않는가, 왜 도망치지 못하는가 "그렇게 싫으면 왜 도망치지 않아?" 혹은 "왜 거부하지 않아?" 주변에 불평불만이 많은 군인을 볼 때 누구나 한번 쯤 들 수 있는 의문이다. 한국사회와 군대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군대가 이러이러한 곳인데 가야만한다고 말해준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도망칠 것이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보면, 군대에 대한 집단적인 거부는 제법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저항은 적어도 제도 개선이라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갇혀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전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아이들은 '친절하게도' 수용소에서 계획을 세워서 전력을 끊고 도망가면 된다며 만일 같은 경우에 빠질 경우 꼭 그렇.. 2017. 12. 19.
기수제와 나이주의 - 저항과 퇴행 사이에서 익히 알려져있듯이, 군대에서는 입대한 연월일에 따라 기수가 정해지고 같은 부대 내의 거의 대부분의 장병들이 기수 위계서열에 따른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원칙일 뿐이다.(좀 더 공식적인 원칙에 따르면 병사들은 상호존중하며 타 부대 장병과도 '전우님'이라는 호칭을 써야한다) 같은 부대 내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 경우, 혹은 매우 친밀한 관계일 경우, 그 부대 내의 암묵적인 룰이 있을 경우(상병 이상, 병장 이상이라든지) 장병 간 호칭과 말투는 나이에 따를 수 있다. 편의상 이것을 '말놓기'라고 부르자. 이런 '말놓기'를 둘러싼 관계는 복잡하다. 간부들은 대체로 이를 묵인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있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말놓기'는 엄격한 군대의 위계질서 규율을 위반하는 하나의 의사소통행위로 보인다. 그렇다면 '.. 2017. 12. 12.
훈련소의 경험에 대하여 아무래도 경험이라는 것은 글로 정리해서 남기지 않으면 어떤 감정의 뭉치로 남게된다. 그런 감정의 뭉치는 공감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만, 어떤 억압, 불만,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남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물론 이 글은 단순히 내 경험에 대한 썰풀이가 아니라 타인의 분석들을 틀로서 내 경험을 설명하고자 한 하나의 시도이고, 그래서 내 경험을 내 스스로 사상화한다거나 하는 거창하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나에게 그럴 재능이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처음 훈련소와 맞닥뜨렸을 때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조교들의 위압적인 태도나 낮선 환경이 아니었다.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들어온 온갖 군대 이야기들.. 2017.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