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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김금희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이 말을 하면 나를 오래 보아왔던 지인들의 반응은 “너가?”이다. 이해가는 반응이다. 3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고, 읽더라도 거시적인 배경들을 가진 글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선배를 만나러 대전에 갔다. 거기서 “다다르다”라는 독립서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 『덕질 아카이빙』이라는 책이었다. 여러 작가들을 글을 아카이빙한 것 같았는데, 김금희편도 눈에 보였다. 그 책 안에는 모의고사 시험지도 있었는데, 작가에 관한 시험지였다. 가장 한국다운 덕질 같았다. 이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 책의 제목이자, 단편 중 하나인 우리는 「페퍼로니에 왔어」는 2020년 김승옥문학상 .. 2021. 10. 1.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611627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모두가 기다려온 정세랑의 첫 에세이!친구의 도시를 걸으며 정세랑이 만난 이야기보다 더 이야기 같았던 순간들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에 대하여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온 book.naver.com 따듯했다. 오랜만에 느껴본 기분 좋은 따듯함이었다. 저자인 정세랑 작가가 SF작가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SF는 금속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따듯함을 이 책에서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작가의 주 장르인 SF가 나의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전에 정세랑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다루는 장르가 유사한 김초엽 작가의 책도 소설이 아니라, 『사이보그가 .. 2021. 9. 28.
백기완 선생님, 아주 낯선 당신을 기리며 최근에 아프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누워만 계신다고 들었다. 전에는 집회에 가서 선생님이 앉아계시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2017년에 군입대를 하고부터는 실제로 뵌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가셨다고 하니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낀다.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없는 기분이다. 실은 선생님과 나의 삶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문민정부 아래서 태어나 민주적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답지 못한 시기도 보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와 함께 왠지 모를 허무감이나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자랐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세 번의 독재체제에 저항해왔고 온갖 투쟁에 함께해오셨다. 선생님의 속까지 내가 알길은 없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뼛속까지 .. 2021. 2. 19.
장소의 기억: 학교의 추모비 우리학교 학생이었다면 누구나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4강의동 앞의 낯선 기둥 두 개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한자로 흰 말뚝 위에 학과와 이름, 연도가 적혀있다. 이 두 말뚝은 학교를 다니던 어떤 두 학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중 하나에는 학생회 간부 수련회 도중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짤막한 설명이 담긴 표지석과 고인이 남긴 글이 남아있다. 학교의 언덕을 따라 5강의동으로 내려가 후문 방향으로 몸을 틀면, 이번에는 2004년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나온다. 이 표지석 역시 학우인 누군가를 추모하는 비석으로 보인다. 종종 비석 앞에는 꽃다발이 놓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 학교에 남은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계속 추모해준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궁금증을 자아내던 이 추모비들은 왁자지껄한 학교생활.. 2021.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