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소도시에서의 생활
0.
지역인가, 지방인가에 관한 논쟁이 있다. 지방이 서울의 시선에서 타 지역들을 객체화 시킨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속한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지방을 대부분 지역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더 보편적인 표현으로 ‘지방’을 활용한다.
1.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 현재 나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흔한 현대판 노마드(nomad)로 현재 거주지의 계약기간이 1달 정도가 남은 상태이지만, 나의 부모님은 결혼 후 한번도 이사를 한 적 없기에 나 역시 지금의 ‘집’에서 대학 진학 전까지 20년을 살았다.
집에는 한 분기에 한번쯤 내려온다. 지난 해까지는 주말을 이용해 2~3일 정도 머물다가, 올해부터는 연휴를 이용하여 꽤나 길게 5~8일 정도를 내려와 있는 편이다. 지방의 집(이하 본가라 칭하겠다.)에서 나의 집(수도권의 집)으로 간다는 표현을 나는 “집에 간다”고 말하고, 그 말에 나의 엄마는 집은 여기인데 어디를 가냐며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교육이민(?) 가구이다.
집을 떠나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긴 후로부터 약 20년간 사용해온 방, 화장실, 거실이 어색해졌다. 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구 20~30만 정도의 지방도시의 특성상 무언가 갑자기 크게 변하는 것이 없다. 늘 있던 가게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있고, 거리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버스 노선도 몇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버스가 빨리 끊기는 것 역시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나는 큰 기시감을 느낀다. 지방이라는 표현처럼 수도권의 시민이 된 내가 나의 ‘고향’을 주체에서 분리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2.
정말 어렸을 때에 나는 나의 고향이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줄 알았다. 그러다 조금 더 자란 후에는 도청 소재지가 있는 옆도시가 가장 큰 도시인 것으로 생각했다. 가끔 서울과 수도권에 여행을 갔지만 그 곳이 큰 도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 깨진 것은 본격적으로 입시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였다. 고등학교의 생활은 뻔하지 않겠는가. 서울과 수도권 대학을 향한 무한한 전진이다.
많은 지방의 고등학생들은 서울 생활을 선망한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 나를 어디든지 가게 해주는 지하철, 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는 버스, 다양한 문화생활 등 많은 요소로 서울은 사람들을 빨아드린다. 나 역시 그랬다.
지금은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집 근처에 있는 대학을 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에는 등록금이 훨씬 저렴한 지역 거점 국립대를 포기하고 나는 집을 떠났다. 그리고 1년여 정도의 서울 생활은 정말로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특히 지하철은 정말로 신기한 교통수단이었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에 한번은 모든 지하철을 타보자는 마음으로 주말에 강남에 간 후, 거기서부터 일산까지 모든 환승역에서 환승하여 가본 적도 있었다.
3.
일주일 간의 고향 생활은 꽤나 인상적이다. 사실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거의 휴가처럼 내려왔기 때문에 늦잠도 자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평소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났다. 하지만 무언가 지워지지 않는 어색함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10시가 넘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것. 분명 나는 더 긴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몇 년 전까지는 이곳의 생활이 나에게 표준이었다. 불과 몇 년의 자극이 얼마나 강했으면 이곳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할까.
분명 이 곳은 살기에 괜찮은 곳이다. 익숙한 언어가 들려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연히 친구를 마주칠 수도 있다. 집 앞 슈퍼에 가면 슈퍼 주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친구의 근황을 들려주고, 옛 이야기를 하며 나를 슈퍼에 30분 동안 잡아 놓기도 한다. 자주 가던 순대국밥집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학교 앞 분식 포장마차 역시 그대로다. 하지만 영화관은 2곳 밖에 없고, 내가 지금 보고 싶은 스타워즈를 상영하는 곳이 없어,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도시로 넘어가야 한다.
4.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인구가 25만 정도 되는 도시라고 한다. 이 곳은 프랑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다. 한국에서 7번째로 큰 도시는 어디인지 굳이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수도권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고, 인구 또한 수십만을 넘을 것이다.
지방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내 고향은 그래도 규모가 있는 종합대학이 위치해있기에 청년 인구가 어느정도는 유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학은 갈수록 규모를 줄이고 있고, 수도권에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 곳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이다. 지금보다 더 어린시절 나의 모든 곳이 담겨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곳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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