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의 발견』은 정치에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저항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통치의 정치이다. 책의 저자인 박상훈이 막스 베버(Max Weber)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옮김이이고, 책에서 마키아벨리를 인용한다는 것에서 저자가 후자의 정치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현재의 진보정치가 전자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에 대한 우려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전자인 저항의 정치는 무언가에 ‘반대’하고 함께 싸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후자의 통치의 정치는 대안적인 것들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전자와 후자를 대립적인 개념으로 놓지 않는다. 하지만 두 가지는 현실에서 통상적으로 대립물로서 존재한다.
많은 투쟁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 “떼쓰지 말라”이다. 혹은 “기다리라”, “힘을 길러서”라고 말한다. 당장 눈앞에의 적과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항을 넘어 대안을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이다. 또한 많은 경우 억압자는 많은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와 접촉하고, 언론과 각종 싱크탱크를 동원하여 대안적인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 반면 피억압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현재의 진보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진보정치세력은 집권할 수 있는 권력과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설사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스피커가 되어줄 언론 등 스피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는 저항하며 통치를 준비하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여건은 둘 중 한 가지도 만족할 수 없는 정도이다.
제한된 우리의 자원(힘)을 어떻게 활용할까에 대한 고민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과 집중’을 말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선택하기에 우리 눈에 밟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저항/통치의 고민과 같은 “명분과 실리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진보좌파세력에게는 지켜야할 명분(=대의)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의적 실천은 우리를 향한 지지로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니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솔직히 현재의 힘으로 과연 실리를 챙길 수는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다.)
저항을 실천하며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을 보고 혹자는 “사회적 경험 없이 옮음 만으로 무장한 맹동주의자”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들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중에”의 맥락이 이러할 것이다.
2.
힘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세월호 투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민주당 대표였던 박영선은 “다수당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96년 총선에서 얻은 79명의 국회의원으로 정국을 장악하고 이듬해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에 이 시기의 민주당과 박영선의 행보는 굉장히 무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과거 민주노동당은 04년 총선에서 10석을 획득하고 나름대로 정국을 흔드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여건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국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넘기며 실리를 챙기려 할 것인지, 끝까지 대의를 유지하며 싸워나갈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나는 진보좌파세력에게는 두 가지의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급진화 시키는 것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권리를 외치고 현행 체제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외치는 것이다. 다양한 민주주의의 실험과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노선은 대립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진전시키고 우리의 지지대오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하여야 한다. 무엇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섣불리 그 사회는 어떠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정말로 민주주의가 급진화 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할 시기가 되면 그 형태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발명’되고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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