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어는 소리, 문자 등을 통해 표현된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형태의 언어 표현을 통해 타인과 소통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언어 활동이 기록되거나,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록되고, 역사가 되는가?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부터 각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의 말, 행동은 기록된다. 그리고 때때로 역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도 누군가 진행하고 있는 기자회견, 절박한 주장은 아무도 찾지 않아서,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아서 공기 중으로 흩뿌려져 사라진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 이후의 주류적 역사 서술은 실증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실증주의적 역사 서술은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사료라는 기록의 수집과 비판에 주요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음성, 영상 등 다양한 기록이 사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 시대에 이러한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문자를 통한 기록이 주요한 사료였다.
문자 기록은 분명히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이미 지나가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시대의 거의 유일한 증거물로써, 우리가 과거와 조우하는 유일한 통로로의 역할을 문자 기록은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물질 문명이 끊임 없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문맹률이 여전히 높은 것을 생각 해보았을 때에, 과거 시대에 기록할 수 있는 자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극히 제한적인 계층이었을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수십 수 백배 늘어난 지금도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조차 쓸 여유가 없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꼭 정치적인 것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 점심에 먹은 식사가 어떠했는지, 친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하루의 고됨을 기록하기는 커녕, 돌아볼 여유조차 우리에게는 있지 않다. 소통의 시대라 하지만 여전히 기록은 우리의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기자, 정치인 등 특정 그룹에게 독점화 되어 있다.
2.
“대부분 현존하는 기록의 성격이 권위의 기준을 반영하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이 종종 현존하는 권력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폴 톰슨(Paul Thompson), 『구술사, 과거의 목소리』
기록은 모여 역사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의 기록은 대부분 신문, TV뉴스 등을 제작하는 언론이 생산한다.(물론 SNS, 1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서술자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적 서술은 언론과 유사 업종에 집중 되어있다.) 10년 뒤, 20년 뒤의 역사가가 지금을 평가하고 서술할 때에 가장 많이 참고할 것은 언론에서 생산한 기사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시대를 역사화 할 때에 지금을 70~80%에 육박하는 대통령 지지율의 시대, 적폐 청산을 중점에 둔 정부가 있었던 시대로 평가할 것이다. 과거 정부와 다름 없이 노동자들은 굴뚝 등 높은 곳으로 오르고, 성주 등과 같이 여전히 삶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늘 그래왔다. 특정계층이 서술을 전유하였기에 역사의 주요한 내용은 왕과 영웅의 영광스러운 업적, 그리고 그들의 정치이다.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사실’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의 큰 허점이 이것이다. 같은 전쟁을 겪어도 누군가에게는 전쟁이 출세의 길, 영웅적 업적이 되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경험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전자이다. 당장 우리는 화려했던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돌아볼 때, 몇 주라는 잠깐의 시간을 위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떠나야 했던 철거민을 기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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