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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글쓰기

괴담과 윤리

by 비내리는날 2018. 2. 1.

 오늘날 수많은 괴담이 우리 주위를 떠돈다. 괴담들은 우리 주위의 일들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떠든다. 최근에는 '조선족'에 대한 괴담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흥행하기도 했다. 괴담들은 우리 주위의 타자들을 괴물로 만들어낸다. 노점상이나 노숙자들이 사실은 좋은 차를 끌고다니고 집이 있을 정도로 잘 산다더라, 외국인노동자들과 조선족들이 살인을 비롯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더라,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을 구해주면 역으로 피해본다더라 등등... 이러한 괴담들은 언론이나 공식적인 매체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SNS를 통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험담으로, 웹툰같은 창작물들로 퍼져나가며 기정사실화된다. 이런 괴담들은 차별적이고 반 윤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번져나가고 생산되는 괴담들에서 어떤 윤리적인 계기를 찾을 수 있을까? 괴담이 사실은 윤리적 궁지에 몰린 우리의 출구전략이라면? 살면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레비나스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윤리적인 압력을 느낀다. 구걸을 하는 노숙인을 그냥 지나칠 때의 찝찝함,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을 못본척 할 때의 양심의 가책, 가난하고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를 마주쳤을 때.... 사람은 타자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 윤리적인 요구를 받았다고 느낀다. 괴담은 그 윤리적 책임감의 출구전략이다. 내가 그 윤리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을 이유, 스토리를 스스로 구축한다. 괴담의 빠른 전파와 공감은 그러한 윤리적 요구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구원책이 되어준다. 타자의 얼굴이 행사하는 힘없는 힘은 폭력과 범죄의 누명을 쓰고, '우리'는 윤리적 책임을 저버린 가해자에서 제3자로, 심지어는 피해자로 둔갑한다. 하나의 윤리적 계기가 폭력적 혐오로 전환하는 순간이자, 자각없이 가, 피해자가 뒤집히는 순간이다(많은 '일반인'들이 약자의 요구를 그다지 폭력적이지 않음에도 폭력, 과격 딱지를 붙이는 것을 보라).


 괴담과 윤리적 행동 사이는 정말로 깻잎 한 장의 차이이고, 동전의 앞뒷면인 셈이다. 우리는 윤리적 책임감이 괴담으로 뒤틀리기 전에, 법과 도덕으로 도망쳐버리기 전에, 우리를 응시하는 타자의 얼굴을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어떤 다른 선택지를 찾아내는 우리 스스로의 책임으로 행동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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