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적 글쓰기

정의기억연대를 위한 변명과 우익운동의 전략

by 비내리는날 2020. 5. 12.

 며칠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당사자인 이용수 선생님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용수 선생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이용당해왔으며 피해자 지원단체이자 일본군 성노예제를 비판해온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가 자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회견은 큰 파장을 몰고왔다. 당사자로부터 나온 비판이기도 하고 정의기억연대의 전 대표 윤미향씨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의 정의연의 운동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5월 11일 정의연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금 지급 내역과 각종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서 지금까지의 운동에서 소홀했던 부분들에 대해 사과하고 방향을 재설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언론과 일부에서는 소명이 충분치 않다며 세부사항들에 대해서 추가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사태에 있어서 문제적이었던 것은 이용수 선생님의 문제제기도, 그에 대한 정의연의 응답도 아니었다. 바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이야기하는 여론과 언론의 태도와 방향성이 심각한 문제였다. 더 나아가 이 사태를 계기로 정의연과 일본군 '위안부' 지원 운동을 넘어 한국 사회 담론의 장을 뒤집으려는 우파들의 전략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이용수 선생님의 비판이 그런 전략의 일부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용수 선생님의 비판을 특정한 담론으로 동원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자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언론과 여론은 이 사태를 두 진실 간의 대결로 보는 듯 하다. 이용수 선생님의 진실과 정의연의 진실 간의 대립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이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선생님의 발언은 피해자 중심의 원리에 따라 진실에 가깝다, 반면에 정의연은 비당사자이며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해왔을 뿐인데(물론 정의연은 30년 간 피해자 지원운동을 함께 해온 당사자다), 이것마저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두 진실 중 어느 쪽은 사실이며 이를 정의연이 입증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들은 편집증적으로 세부사항을 거론하며 심지어 30년 분의 영수증을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그러나 두 진실이 대립한다는 관점은 지나치게 표상적이고 편협한 관점이다. 이용수 선생님은 이용수 선생님 나름대로의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정의연은 정의연이 가진 진실을 말했다. 단지, 모든 말에는 항상 해석과 맥락의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피해자의 말하기는 쉽게 왜곡되거나 불완전하거나 호도(mislead)될 수 있다. 그렇다고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게 정의연이 해왔던 피해자 지원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이야기해온 바이다. 두 개의 진실은 존재할 수 있으며, 무조건적으로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연대, 상호 이해 속에서 하나로 드러나는 것이다.

 

 정의연이 이용수 선생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자신들의 운동 원칙에 따라 피해자 중심의 원리를 따르면서 이용수 선생님의 진실을 믿기 때문이다. 언론이 쉽게 떠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실은 스스로도 피해자 중심의 원리를 믿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언어를 동원하고 차도살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냉소주의 문법에 따라 그들은 피해자 중심의 원리를 도구로 삼아 안전한 제삼자의 자리에 숨어 문제제기의 이름으로 정의연이라는 단체를 넘어서 어떤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바로 연대의 가치이다. 전형적인 위선자, 등쳐먹는 시민단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은 당사자와 비당사자 간의 연대를 이익의 관계로 치환하고 무조건적인 호의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한편 이런 문법은 '실제로 깨끗한 척하지만 위선적이고 더러운 너'와 '비록 더러워도 일관되었다는 점에서 깨끗한 나'라는 반전에서 그런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언론과 세간의 이런 냉소주의 문법을 넘어서 이 사태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우익들은 좀 더 큰 전략적 관점에서 개입해왔다. 정의연이 기자회견을 낸 오늘 이영훈은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을 발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정의연이 '반일종족주의'를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역사인식과 정치의식을 규정했다고 주장하고, 수요집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이용수 선생님의 의견을 미래지향적이라며 상찬했다. 일련의 연속적 사태가 의도되었는지 여부와 별개로 이 사태를 우익들이 충분히 이용하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이 정의연을 '역사인식과 정치인식을 규정'한 단체로 본 것은 어느 정도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정의연의 활동은 불완전한 탈식민화를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분단체제의 현실 아래서 일본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가능하던 상황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런 억압이 성차별적인 것이었으며 가부장적인 전후 대한민국이 수 십년 간 피해자의 말을 가로막아왔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기도 했다. 바로 그 대한민국이 피해자의 입을 막아왔던 가부장제 국가이며, 냉전적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 구도 속에서 과거사 청산을 무시하고 일본과 수교하며 일본의 원조금으로 '근대화'하여 성공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우파는 그런 면에서 탈식민적 민족주의와 충돌했다. 이들의 정신적 뿌리가 과거사 청산을 묻어버린 성장만능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성장이 계속 지속되고 자본주의적 가치가 활개를 칠 때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탈식민 문제가 다시 떠오르자 우파는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근대주의+탈민족주의를 가치로 삼는 뉴라이트 운동이었다. 그러나 뉴라이트 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들이 다시 떠오른 것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파산과 함께 보수우파가 정신적으로 붕괴하고 남북화해 국면의 등장으로 냉전적 세계관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탈분단, 탈식민적인 민족주의에 대항해 신냉전체제에 맞는 우파식 민족주의 '대한민국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탈식민적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폄하하는 것이다. 진짜 민족주의인 '대한민국주의'는 한일 간의 갈등을 '화해'로 해결하고 '증오의 정치'를 중단시킬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의 역사를 긍정하고 그것이 수반한 가치, 자유민주주의(성장지상주의와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해야한다. 이것이 우파들이 들고 나온 전략이다.

 

 연대의 가치를 파괴하고 이를 이익의 관계로 격하시키는 관점은 그런 점에서 자유시장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딱 맞는 방법론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냉소적 관점이 만연하고 있고, 정의연에 대한 이런 식의 비판은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비판이 통한다고 우익들의 전략이 먹혀들어간다는 법은 없다. 정의연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 중에도 당사자로부터 나온 비판의 충격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일종족주의>집단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우리가 그 기반이 되는 냉전체제와 성장지상주의 신화, 이익 만능의 관점을 실천적으로 분쇄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것이 비록 정의연 운동의 비판점이 발견되었다 해도 정의연 운동의 가치를 지키고 옹호하며 지켜나가야할 이유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