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력은 타자에게 향하는 유무형의 힘이다.
폭력은 모든 타자에게 작용하는 힘이다. 폭력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물리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진다. 가령, 나는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팔을 뻗어 상대를 때릴 수 있다. 또한 그에게 욕설을 내뱉어서 그를 슬프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30km 남쪽에 사는 김아무개에게 팔을 휘둘러 때릴 수는 없다. 또한 어떤 매개체 없이 그에게 욕설을 내뱉을 수도 없다. 100여년 전에 살고 있던 선조 아무개나 미래에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한편 물리력의 크기에 따라, 혹은 속도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작용할 수도 있다. 가령, 핵폭탄이 서울 상공에 떨어진다면 그 위력의 범위만큼 초토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폭력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자연물까지 파괴, 변형시킨다.
2. 모든 폭력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드러나는 폭력, 양(+)화된 폭력이다. 다른 하나는 숨겨진 폭력, 음(-)화된 폭력이다.
양화된 폭력은 직접적으로 강제하는 폭력으로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반면 음화된 폭력은 숨겨져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모든 폭력의 총합 상태는 영(0)이다. 양화된 폭력과 음화된 폭력은 서로를 무화시키며 0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지닌다. 모든 양화된 폭력은 시간적, 공간적 거리에 따라 양적인 성질을 상실하며 음화된 폭력으로 전환된다. 예시를 들어보자. 내가 가진 대포로 사정거리 내에 있는 상대를 쏜다면 그것은 양화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포의 사정거리 바깥에 있는 상대에게 나의 대포는 음화된 폭력으로 잠재적 폭력이자 고려의 대상이지만 감각적이지도 직접적이지도 않다.
3. 양화된 폭력은 즉각 다른 폭력을 이끌어낸다.
양화된 폭력이 발생하고 0의 균형이 무너지면 즉각 다른 폭력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내가 옆에 있는 누군가를 팔을 벌려 때린다고 치자. 상대방은 즉각 나에게 반격을 할 것이다. 또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 않을 경우 그는 폭력을 참는다는 의미에서 타자인 자기 자신에게 참는다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방어작용이기도 하고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정으로 돌을 깨면 돌은 깨져서 떨어져 나올 것이다. 동시에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음화가 필요하다. 시간에 지남에 따라 음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폭력을 조직해서 제도적으로 음화시키기도 한다. 사회 총체의 폭력을 이론적으로 음화한 것이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제도이다.
4. 근대사회는 이론적으로 모든 폭력을 국가에 집중시킨다.
국가가 소유한 총, 미사일, 탱크, 전투기, 곤봉과 권총은 국가가 독점한 폭력의 응집물이자 외화이다. 국가가 소유한 폭력의 잠재적인 양은 그 국가의 인민이 가지는 잠재적인 폭력의 총량보다 크거나 같다. 만약 어떤 나라가 소유한 폭력의 양이 인민이 가지는 폭력의 양보다 작다면 그 나라는 국가로써 기능하지 못하거나 실패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그 나라가 보유한 폭력이 인민이 소유한 폭력보다 지나치게 크다면 그 나라는 독재국가거나 인민을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폭력을 국가가 소유하지만, 실제로는 인민 역시 폭력을 소유하고 있다. 국가는 내가 지나가던 사람을 때릴 가능성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단, 제도화되고 음화된 폭력을 양화시켜 나를 구속하고 제지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3번 테제에서 보았듯이 양화된 폭력은 즉각 다른 폭력을 필요로 한다.
5. 모든 폭력은 기본적으로 계산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경향성은 알 수 있다.
어떤 폭력의 양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그 물리량은 계산할 수 있어도 영향력은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똑같이 때렸을 때 상대의 반응이 늘 똑같다고 할 수 없다. 나무 한 그루를 똑같이 베었다고 할 때도 그 영향력이 똑같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제도가 음화하고 있는 폭력의 양이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규모를 추측하거나 그 경향성을 추적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값을 산출해낼 수는 없다. 우리가 늘 폭력에 조심스러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 우리가 불필요한 싸움, 갈등, 투쟁, 전투에 휘말리는 이유는 상대의 정확한 폭력값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든 무지에 의한 것이든 실수이든 말이다.
6. 핵무기는 최고 폭력 병기로써 처음으로 무한에 수렴하는 추정치를 가진 발명품이다.
이 병기의 탄생만이 병기의 소유국 간의 투쟁을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있는 사태로 핵무기의 폭력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무한에 수렴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가진 핵무기로 북한을 영구히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도시 몇 개가 영구히 가루로 될 가능성 때문에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기껏해야 경제적 제재를 통해 압박을 가할 수 있을 뿐이다. 고도로 발달된 핵무기는 작은 크기로도 아주 멀리 있는 지역을 거의 영구적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다.
7. 국가 간의 관계는 각 국가가 가진 폭력의 총체 간의 관계이다.
고전시대에는 인구가 많은 나라가, 혹은 병기기술이 더 발달한 나라가 기본적으로 우위에 섰다. 외교관계란 국가 간의 외화된 폭력에 의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폭력을 제도화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고전시대에는 조공책봉체제를 통해 중국이 가진 폭력의 우위를 인정하고 각 국가 간의 관계를 서열화하여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폭력의 관계가 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근대의 만국공법 시대였다. 폭력을 많이 소유한 국가가 적게 소유한 국가를 위협하거나 식민지화하고 그렇게 몸집을 키운 국가 간에 경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노골적인 관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핵무기의 등장, 절대 강국인 소련과 미국의 등장으로 비로소 억제될 수 있었다.
8. 민주주의란 이론적으로 폭력을 균등분배하기 위한 제도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근대국가와 함께 탄생했다. 이전 시대에는 폭력은 소속 계급에 따라 주어졌다.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 이론적으로 모두에게서 동등히 폭력을 회수해야했고, 그만큼의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1인 1표를 통해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고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란 이렇게 동등하게 분배되었어야할 폭력이 실제로 특정인, 특정집단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위기는 폭력이 적은 자들이 조직되어 폭력을 행사하도록 만들고, 폭력은 3번 테제에서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또한 북한의 모습에서 폭력이 완전히 국가(당)에 의해 소유되어 모든 권리를 상실한 상태를 볼 수 있다.
9. 양화된 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음화된 폭력을 필요로 하고, 폭력의 음화는 가진 폭력의 총량만큼 가능하다.
내가 팔을 휘둘러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에너지와 단련이 필요하고, 또 매시간 폭력을 마구 발산하지 않기 위한 억제력도 필요하다. 총기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각종 안전장치와 무기고가 필요하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폭력적인) 규율과 제도들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 많은 인력과 제도, 기술들은 그것이 가지는 폭력의 양, 위력 때문이다. 한편으로 폭력의 음화는 가진 폭력만큼 가능하다. 나는 내가 가진 힘만큼만 참을 수 있다. 국가 제도는 그 국가가 가진 폭력의 총량만큼 가능하다. 경찰력, 군사력은 그 나라의 제도가 유효하게 작동하게 하는 지표이다.
10. 자본주의는 금전을 통한 폭력의 분배 상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가진 금전은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의 양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진 금전을 온전히 폭력으로 전환할 수 없는 이유는 국가 혹은 다른 행위자가 자신이 가진 폭력을 행사하는데 방해받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 내에서 누구든 자신의 자본으로 폭력을 동원해 자연을 변형하고 생산하도록 할 수 있다.
11. 폭력의 총량은 양화된 폭력의 값에 음화된 폭력을 양의 값으로 더한만큼이다.
지금까지 양화된 폭력과 음화된 폭력은 대립하며 둘의 총합은 0으로 수렴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폭력의 상태에 대해 설명할 때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폭력의 총량을 설명할 때에는 양의 값과 음을 양으로 전환한 뒤 더한 값이 맞다. 가령 폭력의 총량을 설명할 때, 원시시대의 인간이 가진 폭력의 상태는 0에 수렴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인간이 가진 폭력의 상태도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러나 원시시대 인간이 가진 폭력의 총량은 양의 값이든 음의 값이든 극히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훨씬 큰 양의 폭력을 소유하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원자력발전소들, 산을 뚫고 길을 내는 기계들, 조용히 총구를 닫고 있는 수 많은 병기들이 그것들이다. 음화된 거대한 폭력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헤맸을 우리 선조들 개인과 거대한 도시군을 살아가는 우리 개인 중에서 양화된 폭력을 더 잘 느끼는 것은 어쩌면 선조들일지도 모른다.
12. 오늘날 폭력의 총량은 무한을 향해 간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점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폭력을 창조해낸다. 핵무기로 정점을 찍은 무기기술 뿐만 아니라 점점 발전하는 생산기술들이 폭력을 생산해낸다. 교통수단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폭력의 공간적 한계를 돌파시켜주었다. IS는 기술발전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폭력을 조직시키는지 보여주었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던져버리고 구시대적인 국가 건설로 관심을 돌림으로서 자멸했다. 인간이 가지는 폭력의 총량의 증가는 자연의 파괴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알 수 있다. 기후가 급변하고 지형이 변화하고 온도가 증가하는 현상에서 인간이 가하는 폭력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12-1. 오늘날 인간은 폭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
폭력은 무한히 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인간의 가능성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여왕처럼 기술에 의해 갱신되면서 동시에 기술에 의해 금세 따라잡히고 만다. 기술은 폭력의 총량을 증대시키면서 동시에 폭력을 통제할 능력도 준다. 그러나 점점 그 간극은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폭력은 인간이 통제하기에 너무 거대해졌고 제도는 비대해졌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폭력의 발전으로 폭력은 점차 독점되기보다 편재되고 있다. 이는 폭력의 민주화라고 부를만하지만 폭력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에 불확실성과 위험성은 훨씬 커졌다. 행위자들은 폭력의 총량에는 점차 둔감해지지만 폭력 자체에는 더 예민해졌다. 작은 폭력의 불씨가 폭력의 연쇄를 일으킬 조건이 갖춰져있는 것이다. 내가 옆 사람을 때리는 사건이 이전에는 나와 옆 사람의 관계였다면, 이제 SNS를 타고 폭력에 대한 감정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모방폭력과 예민한 대응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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