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에 한국사회에 분기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2016~2017년의 촛불항쟁(여기서는 일련의 촛불집회들을 이렇게 부를 것이다)일 것이다. 어느새 촛불로부터도 4년 가까이 되었지만 촛불로 인한 정치사회적 재정렬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이 2017년 대선 이래로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개혁 요구가 정치적으로 반영되어 검찰개혁, 교육개혁, 임금인상, 과거사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관계 문제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개혁들은 교육정책이나 임금문제처럼 역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2017년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2016~17년의 촛불항쟁이 낳은 것이기도 하다. 촛불항쟁의 요구는 "박근혜 퇴진"이라는 단순한 하나의 구호로 결집되었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한 욕망이 들끓었다. 하나의 강력한 힘이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이끌어냈지만, 동시에 그 힘들은 내포한 다양한 욕망으로 인해 이후에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촛불항쟁 당시에 사람들의 의식은 어땠을까.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은 분노하고 또 촛불에 참여했을까.
촛불항쟁 당시의 시민 인터뷰 몇 건을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배신감이라는 감정과 함께 표현되는 자각적인 역사의식의 존재이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임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제 아이들이 컸을 때 엄마 그때 뭘 했어 그 시기에 뭘 했어 이런 걸 물어볼 것 같고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도 이런 것은 알려주고 현장에 나와서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이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나왔다" "아이들이 최순실이 누구고, 진짜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제주에서도 시위에 참석했었는데, 나도 역사의 한 장면에 서있고 싶었고...“
여기서는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을 자각하고,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려는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그 역사가 계승되고 후세대에 이어진다는 점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시민들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역사적 주체로 서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경험은 2017년 이후 사건마다 시민의 참여와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촛불항쟁의 원인이 되었던 박근혜-최순실 스캔들, 특히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에 대한 분노였다. 권력과 돈을 등에 업은 사람이 부정한 방식으로 학벌을 쟁취해서 사회의 공정성에 금이 갔다는 인식이 자주 나타났다.
"정유라는 그저 부모를 잘 만났다는 그 하나 이유 때문에, 좋은 대학까지 가면서 남들의 노력과 기회를 빼앗은 것 때문에 정말 황당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 지금 몇 년 동안 죽도록 준비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걸 그렇게 쉽게 무시하고 쉽게 대학에 갔다는 것에 화가 나고요.“
"누구는 노력해서 학교 들어가고 입시 준비하는데, 누구는 돈으로 다 하니까 억울하고,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은 노력하면 삶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덕분 아니겠느냐”“특혜를 받는 누군가에게 항상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모두를 절망감에 빠뜨리고 있다”
여기서는 2019년에 소위 조국 사태나 최근의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에서 나타나는 청년세대의 공정에 대한 똑같은 감각을 볼 수 있다. 노력한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정해진 기회가 있는데 그것을 뺏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또한 이런 사태를 만들게 된 입시구조나 학벌체제에 대한 불만보다는 권력으로 특혜를 받은 특정 일탈자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여기서 분노는 체계적으로 차별적이라기보다는 일탈자에 대한 일반적인 분노에 가깝다. 여기에는 조국사태나 인국공 사태에서 나타나는 정치적이거나 차별적인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삶에 대한 불만과 절망감이 나타난다.
촛불항쟁의 경험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스스로 역사적 주체라는 의식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이어진 선거들에서 높은 투표율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이 어떤 정치세력의 의제이건 간에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코로나 이전까지)직접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역사에의 참여라는 실감은 2018년 남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주었던 강력한 관심과도 결부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긍정적으로 관심을 표했고, 평양냉면집이 꽉 찰 정도로 간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났다.
조국사태는 촛불이 보여준 두 가지 특징, 참여의식과 공정성이 2017년 이후로 강하게 결합한 사건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특혜의혹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고, 특히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정유라 사건에 비할만한 사건으로 여겼다. 물론 여기에는 촛불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한 가지 특성이 드러났다. 바로 학벌주의와 입시구조 자체의 불공정성이 드러난 것이다. 조국의 딸은 특별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 상류층 사회의 '노하우'를 공유한 것이었고, 상류층 사회의 '노하우'가 드러나면서 학벌주의 자체의 정당성이 의문에 부쳐졌다.
이는 2016년 이전의 경향, 대학입시특별전형들에 대한 세간의 비난, 수시에 대한 정시의 우월성에 대한 주장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특별전형에서 드러났듯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특별전형은 정유라의 케이스에서처럼 시스템의 일탈자로 여겨졌고, 시스템 자체를 불순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겨졌다. 학벌 시스템 자체는 의문에 부쳐지지 않았고, 공정성의 기준에 대한 지리한 논쟁으로 돌아갔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은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국공 사태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험을 통해 정규직을 뽑는 시스템이 절대화되면서 실제적으로 업무에 능통하고 입지의 불안정성 때문에 근무에 영향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스템의 일탈자라는 오명을 썼다.
여기서 이러한 '공정성' 이데올로기를 일본사 연구자 야스마루 요시오의 '통속도덕론'을 빌려 설명해보고 싶다. 통속도덕론은 에도시대 일본에서 유교 이데올로기가 서민층에까지 퍼지게 되면서 내면화되었는데, 이것이 근대화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쳐 농민들의 근대화에 대한 적응 및 반발, 반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국의 통속도덕은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공정성'이었고, 이것을 내면화한 개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입시와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의 지배집단인 박근혜 정권이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어겼고, 이에 대한 분노가 촛불항쟁을 촉발시켰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공정성'은 중요한 가치로 남았고, 심지어는 정권이 추구하는 개혁마저도 '공정성'에 어긋나면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공정성'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정파적 이유에서 다소 억지로 동원되기도 했고, 역으로 학벌제도나 입시 노하우의 존재를 까발리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공정성' 자체는 이데올로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원리가 사회의 중심이 된 것은 '공정성'보다 우선하는 원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선포된 이래로 사회의 시스템을 드러내주는 비판적 원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빈자리를 시스템을 지키는 원리인 '공정성'이 채운 것 뿐이다. '공정성'이 시스템을 수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정함을 위한 개념으로 전유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자체를 드러내주고 비판할 수 있는 이론의 존재가 필수적일 것이다.
'정치적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이 실종된 사회와 인종주의 (0) | 2020.08.12 |
---|---|
코로나19 주저리 주저리 (0) | 2020.08.02 |
그를 애도하지 못하며 (0) | 2020.07.17 |
정의기억연대를 위한 변명과 우익운동의 전략 (2) | 2020.05.12 |
나의 폭력론 1 (0) | 2020.05.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