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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글쓰기

박지원의 낙선과 호남 정치의 변증법

by YH51 2020. 4. 19.

'금귀월래', '정치9단'. 박지원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워낙 오랜 기간동안 민주당계 정당에서 주목 받는 정치인이었기에 선수가 5선은 되는 줄 알았는데 이번이 5선에 도전하는 선거였다.  

박지원은 본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미국에 망명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부터이다.  DJ에 삶에 감복한 박지원이 망명자 김대중의 후원인이 되었고, 후에 귀국하여 92년 비례대표 당선을 시작으로 정치인의 삶을 살게 된다. 

박지원은 08년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목포에서 내리 3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3번의 선거에서 각각 다른 정당으로 출마하였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08년에는 무소속으로,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그리고 16년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으로 각각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현역 정치인들 중에는 부천의 설훈 정도가 동교동계로 분류된다. 동교동계는 DJ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하던 동지들, 쉽게 생각하면 김대중의 계파인데 박지원은 엄밀히 말하면 동교동계라고 할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김대중의 정치활동이 합법화된 이후로 궂은 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얼마전 작고하신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그가 얼마나 DJ에게 헌신했는지를 알수 있다.  

하지만 박지원은 얼마전 치러진 총선에서 DJ의 고향이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민주당 김원이에게 꽤 많은 표차로 밀리며 낙선했다.(민주당 김원이 48.7%, 민생당 박지원 37.3% 정의당 윤소하 11.8%) 박지원의 낙선을 두고 많은 평가들이 있다. 주류적인 평가는 박지원 개인의 의정활동보다는 지난 총선에서 호남에서 대거 당선된 국민의당에 대한 평가로서의 낙선이다. 

지난 16년 총선에서 호남에는 '녹색 돌풍'이 분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을 누르고 대거 당선된다. 당시 민주당은 전통적인 '표 밭' 호남 지역에서 전북에서 1석, 전남에서 1석 총 2석의 의석을 얻는다. 당시 많은 평론가들은 민주당의 호남에서의 관성적 활동과 '고인물' 정치에 신물을 느낀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전략적으로 국민의당을 지지했다고 해석하였다. 당시를 돌아보면 호남의 주된 정서는 '민주당이 정신차리려면 한번 혼나보아야 한다'였다. 또한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홀대한다는 '호남 홀대론'도 꽤나 언급되던 단어였다.(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이에 꽤나 신경쓰는 모습이다. 문 정권에서의 두명의 총리는 모두 호남출신이고, 임종석 전 비서실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자의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박지원을 포함한 조배숙 등 국민의당 의원들 역시 사실상 민주당계 고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의 관성적 활동에 대한 비토는 상당했고 이는 표로 나타났다. 

정리하자면 국민의당 돌풍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외화였다. 국민의당이 이 흐름을 잘 이해하여 민주당의 견제세력으로서 지역정당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면 이번 선거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유권자가 준 소명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향을 걸었다. 본격적인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 합당하며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물론 이는 소위 '호남 정치'란 무엇인가를 유실히 보여준 일이기도 하다. '호남=민주당계 정당=진보'라는 외형적 모습에서 벗어나 호남의 보수성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의원들의 면면과 이후 방향성에서 보듯,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계 정당을 딱히 '진보적 가치를 가진 정당'이라고 사유하지 않는다. 정말로 철저하게 그들의 표의 방향은 '지역'과  '국가의 이익'에서의 변증법적 운동 안에서 움직인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호남의 선택을 단순하게 영남과 미래통합당의 관계와 비교할수는 없다. 또한 단순하게 지역주의라는 관점에서 호남과 민주당과의 관계를 읽으려하는 것은 철저하게 잘못된 사고이다. 굳이 80년 광주민중항쟁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재의 호남에서 미래통합당을 보면 도저히 찍어줄 수 없는 수준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영남에서는 민주당계 정당들이 김부겸 등 어느정도 실력을 갖춘 후보들을 출마시키지만, 호남에서의 미래통합당은 전혀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또한 정당의 지도자로서 호남출신이 미래통합당에 당권을 잡아본적도 없다. 반면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노무현과 문재인이 부산 출신이고, 최근까지 당 대표를 맡았던 추미애 장관 역시 대구출신이다. 리틀 DJ라 불리던 한화갑 대신 노무현에게 표를 몰아준 노무현의 드라마 같은 경선도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박지원이 낙마했다. 목포는 실력있는 지역에 이익을 이끌어올수 있는 중진 정치인을 잃었다. 대신 오만했던(?) 국민의당을 확실하게 심판했다. 또한 이를 통해 친문적인 민주당의 길에 4년전과 달리 탄탄대로를 만들어 주었다. 이와 같은 선택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까. 다만 확실한 것은 민주당의 선전이 우리 사회가 진보해야한다는 방향성에서 볼 때에 그리 낙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강래의 낙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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