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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글쓰기

갈림길에서

by YH51 2020. 3. 29.

갈림길에서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유일한 현실 사회주의의 모델이자, 이상이었던 소련의 붕괴는 혁명을 꿈꾸던 ‘남한’ 사회의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혹자는 과거 서노련의 지도자에서 지금은 아스팔트 우파로 변해버린 김문수의 변절도 이 때의 영향이 클 것이라 말한다. 김문수처럼 소련 해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떠났다. 많은 소위 ‘학출’들은 현장을 떠나 학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가끔 신문을 보면 성공한 사업가들 중 이 때의 충격으로 운동을 정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믿음과 신뢰는 '시간'으로부터 나온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혹은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그 사람과 함께 해온 시간을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사상도 사람을 매개로 외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말하는 사람을 믿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매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의사결정에서 과거에 얽매이는 것을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라 말한다. 일명 매몰비용이다. 

 인간은 본디 촉이 예민한 동물이다. 사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별할 것을 나는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상향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기에, 과거의 시간은 매몰비용이 아닐 것라 생각하며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운동권'으로 산다는 것, 돈이 되지 않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루하루, 일년 일년이 지날수록 가난과 '정상사회'로부터의 도태는 구체화된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버티는 것'에는 분명 한도가 있다. 

 약 10여년을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살아왔다. 10년동안 당은 계속 작아졌다. 선거를 앞두면 항상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정당을 향해 떠났다. 이유는 다양했다. 심지어 우경화되는 저들을 막아보겠다며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사적 경험에서 보았을 때에 떠난 자의 금의환향은 없었다. 부디 금의환향이 아니라, 떠나간 자리에서의 역할과 위치를 잘 살피는 사람들로 살았으면 좋겠다. 잘 가시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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