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적 글쓰기

그 가위는 무엇을 잘랐나

by 비내리는날 2019. 5. 31.

 부마항쟁을 둘러싼 전설(?) 중에 잘 알려진 것으로, 당시 유신대학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학생운동이 죽어있던 부산대에 이화여대 학생들이 남근 그림과 가위를 보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자존심이 상한 부산대생들이 항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관련기사

 

 그런데 관련 이야기는 다른 대학에도 있다. 가령 충남대에도 그런 이야기가 돌았다고 하고, 조선대, 전남대, 영남대, 서울대 등등 거의 대부분의 대학에 돌았던 이야기라고 한다. 이대는 학생운동 군기반장(?)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사실 가위 이야기는 이미 이대알리라는 이대 학생들이 만든 인터넷 언론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링크 기사는 가위 이야기가 가진 효과와 그것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성격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보여주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당시 박정희는 스스로를 나라의 아버지로, 자신의 아내 육영수를 어머니로 표상하려 했다. 여기서 잠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제는 비판받는 프로이트적 관점을 가져오고자 한다. 프로이트적 관점은 오늘날에는 지나친 남성중심주의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묘사한 가족 내 투쟁이 아버지-아들 간의 투쟁이고, 그것이 여성의 소유(이것이 권력 그 자체다)를 둘러싼 투쟁이라는 점은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성들의 권력역학에 대한 자기 설명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설명한 모델은, 여성을 독점한 가부장적 아버지를 형제들이 살해하고, 그럼에도 가지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과 선망이 토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아버지의 여자'에 대한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근친상간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대생들이 대학생들에게 보낸 가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반공국가라는 가부장적 체제 아래서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던 박정희는 박근혜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 전에 국민의 아버지였다. 문제는 '자식들'이었다. 아버지는 10.26 때 보여줬듯이 국가 내 여성의 소유자처럼 굴었다('여성'답지 않은 국민, 동일방직이나 YH무역 등에서 투쟁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던져졌다). 모든 국민들은 아버지의 법에 종속되었다. 프로이트는 남아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거세공포를 극복하고 같은 남근을 가진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남성의 주체화라고 여겼다. 이는 오직 가부장제 매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유효하다. 남근을 일종의 (남성중심적)정치적 권위의 상징이라고 본다면, 위의 모델과 합쳐보면 정치적 귄위가 없는 아들들이 권력을 독점한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나눠가지면서 대신 단일한 '남근'이 아닌 공동체 자체를 상상적 남근으로 삼았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가위 이야기는 남대생들 스스로가 가졌던 위기감을 '이화여대생이 보낸 가위'로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화여대생은 단지 아버지와 아들의 투쟁을 촉진하는 매개에 불과하다. 가위는 '남근'상실의 공포와 동시에, 가위 자체가 하나의 남근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무기력한 남대생들을 밀어내고 '남자'가 될지도 모르는 여자라는 또 하나의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졌던 이유도 추측할 수 있다. 가위 이야기가 남대생들의 '부친살해'를 촉진하고 그들 간의 '형제애'를 나누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대생은 이중으로 배제되는데, 첫째는 여대생을 투쟁의 주체가 아닌 매개물로 만들고, 둘째는 각 대학에서 이 이야기로 호출되는 사람이 남대생이라는 점에서 여대생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결국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들이 아닌 다른 자식이었지만, 1인 독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 민주주의 시대가 왔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산업화의 아버지로 호명한다. 소위 민주진영 사람들은 좀 더 따뜻하고 보편적인 아버지로 국가를 제시한다. 나라다운 나라. 사람사는 세상. 이것은 아버지의 망령이 아니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세워진 민주주의 체제 역시 가부장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586의 역사 내러티브 속에 나타난 가위 이야기는 역사 속 여성 배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다시 남성들이 가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메갈, 워마드의 횡포에 시달린다는 이들은 아직은 정치화되지 않았지만 이 새 가위 이야기를 매개로 뭉치고 있다. 화면 너머에서 '남혐'을 보낸다는 이 가위 이야기는 남성들의 핑계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의 투쟁은 가위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위를 들고 나타나 가부장제의 고리들을 잘라내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