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를 달군 가장 '핫'한 이슈는 단연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와 모 지자체장의 조폭 연루 의혹이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기무사령부 내에서 초법적인 계엄령이 검토되고 실제로 실행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로부터 1년 후 이루어진 지방선거로 당선된 지자체장이 실은 조폭과 연관이 있었다는 내용이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터져나온 두 사건 사이에 무슨 상관이라도 있을까.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기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 다른 폭력 집단을 위협으로 여긴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조폭에 대한 국가의 엄격한 대응은 그런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이를테면 멕시코나 이탈리아처럼 강력한 범죄조직이 국가의 손에서 벗어나 있는) 국가는 무능하고 실패한 국가로 여겨진다. 이렇게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 그만큼의 정당성이 필요하므로 선거와 민주주의로 기구를 통제하고 법을 통해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국가가 현실적으로 모든 사적 폭력을 제재할 수 없기에 현실에서는 폭력이 존재하고 조직폭력 또한 존재한다. 존슨 너새니얼 펄트의 『한국무력정치사』에 따르면, 특히나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는 국민들이 국가폭력에 민감해졌기 때문에 철거, 시위진압, 파업 등에 대한 대응에 군과 경찰을 동원하기보다 조폭, 사설경비업체 등으로 폭력을 하청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경우 국가는 폭력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숨기기 위해 조직폭력집단의 폭력 사용을 묵인하고 조직폭력집단은 국가로부터 허가받은 폭력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상부상조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 이후 사용되어온 '폭력 하청' 대신, 직접적으로 경찰력을 활용하여 탄압한 것에서 왔다. 철도노조 파업 당시의 민주노총 침탈,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세월호 집회 탄압,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이른 폭력진압 등등 수 많은 사건들에서 국가가 노골적으로 폭력기구로서의 성격을 드러내 반감을 샀고, 그러한 폭력 사용에는 국민의 보호와 인권 보장 같은 정당성을 보여줄 만한 요소도 없었다. 결국, 2016-17년의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게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은 군을 동원하여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려했다. 촛불은 아무리 국가가 폭력독점기구라 하더라도 그들이 민주주의와 인민 아래에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확인해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촛불계엄의 검토는 아무리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권력이더라도 국가의 힘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위험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권력을 뒤엎은 촛불의 힘으로 새로 등장한 권력이 조폭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스캔들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위에 언급한 너새니얼 펄트의 저서에서는 지방의원들의 운전기사 등을 하면서 정재계에 밀착해 이익을 벌어들이는 조폭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마도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조폭과 지역정치인들이 관행적으로 그런 관계를 맺어왔을지 모른다. 촛불의 힘은 이런 관행을 가진 선출된 권력들과 국민청원으로 대표되는 행정부의 강력한 힘에 대한 의존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 힘을 보존하고 조직하여 무소불위의 국가를 견제할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다시 조폭같은 국가, 국가에 빌붙은 조폭들에게 시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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