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중국 책임론, 유럽 난민사태, 근대적 주권론과 초국적 책임
최근 우파 언론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행정부가 직접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는 등 책임을 묻는 목소리들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반론이 존재한다. 중국에서 생긴 바이러스를 중국이라는 국가가 책임져야하는가부터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 서구 국가들에 대한 책임회피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반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책임론을 둘러싸고 시원치 않은 부분이 있다. 분명 중국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것에도 일면의 진실이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상황통제에 실패함으로써 세계로 퍼져나가는 원인이 중국당국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책임의 정도와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의 중국 책임론은 어떤 면에서 유럽 난민사태를 떠오르게 한다. 각 국민국가와 유럽연합의 통제 수준을 벗어나는 무국적자들이 지중해를 넘어 쏟아져왔고 그 책임을 어느 한 국가에 물을 수 없는 사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하는 난민은 누군가가 책임져야하는 존재였다. 유럽연합은 난민을 분산수용하여 책임을 분산시키고자 했지만 각국은 자국의 사정에 따라 국경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들의 경제적 파산과 유럽에의 부의 집중은 국민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책임을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들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근대적인 주권론이 모든 인간이 아니라 국토 내에 존재하는 국민들, 국경선 내에 존재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각 국가는 자국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자국민의 행동(과 자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의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진다. 중국은 외국에서 벌어진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이 존재하지만 주권국 중국에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근대적 주권관에서는 오로지 직접적인 국가 대 국가의 충돌인 전쟁과 격식을 갖춘 관례인 외교만이 초국적으로 처리가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바이러스, 기후변화, 난민사태, IS 같은 국제테러단체는 기존의 주권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것들은 국경을 넘어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우리 세계는 국경을 닫고,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나 바이러스의 문제를 국경을 닫고 관계를 끊어서 해결할 수 있는가? 각국이 폐쇄적이고 자국중심적으로 행동할수록 초국적인 문제들은 인간의 영향력을 벗어나 활개를 치고 있다. 무엇보다 근대적 주권론으로는 피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대양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나라들이며,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강대국들이다. 난민문제 역시 남유럽의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며, 북유럽의 부유한 국가들은 그만큼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력한 나라들은 비록 지금은 패닉에 빠져있지만 가난한 나라들보다 먼저 위기로부터 빠져나올 것이다. 주권국가 간의 이런 불균형은 문제를 방치하고 악화시키게 만든다.
국제연맹이나 여러 국제기구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되었지만 초국가적 위기가 부추기는 자국중심주의에 밀려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반-국제기구적인 행보만 봐도 그렇다. 그렇지 않은 기구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나라에게 휩쓸리고 만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근대적 주권론을 벗어나는 초국적 책임이 필요하다.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국가적 이익을 넘을 수 있도록 조직되어 기성의 국민국가를 넘어서 책임 부과가 가능한 국제적 기구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