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2014년/장기 2016년의 종착지로써의 21대 총선
2020년은 여러모로 한 시대가 끝났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해인 것 같다. 코로나 사태라는 비상사태 속에서 치뤄진 21대 총선의 결과 여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했다. 이렇게 한 정당이 선거를 통해 국회의 3/5을 차지한 것은 87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처음으로, 국회 선진화법을 무효화할 수 있을만큼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반면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3석 차이로 넘겨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 20대 국회의 다당제 구도 속에서 한 축을 맡았던 정의당, 민생당, 국민의당은 각각 6석, 0석, 3석을 확보하며 유의미한 의석수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21대 총선의 결과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본 글에서는 그 시작을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부터로 잡고, 총선과 촛불, 탄핵이 진행된 2016년을 기준으로 장기지속된 정치적 변동의 효과로 보고자 한다. 2014년부터 단지 의회 정치 뿐만 아니라 대중운동과의 상호작용을 살펴야 오늘날 이런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모두가 알다시피 일어나서는 안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가 뒤집히는 사고로 우리는 동료시민 304명의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진 대처는 참사만큼이나 끔찍했고 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정권 차원의 갈라치기 전략이 시작되어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고 사고 자체를 무마시키고자 하는 여론이 생겨났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벌어졌고, 2015년 1주기에는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국가권력과 격렬히 대립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등을 비롯한 실정을 규탄하기 위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려 10만 군중이 광화문 광장 인근에 결집했다. 이것을 경찰이 막아세우면서 충돌이 빚어져 백남기 농민이 쓰러져 의식을 잃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렇게 2014~2015년에 생명, 안전이냐 - 치안, 통제냐를 두고 생겨난 전선은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로 이어졌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중의 정치적 욕구는 여소야대의 다당제로 나타났다. 이어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백남기 농민 장례식에서도 대중의 생명, 안전에 대한 욕구가 다방면으로 분출되었다. 이것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변곡점을 맞아 한번에 터져나왔고 촛불 항쟁으로 이어졌다.
2016년은 그런 면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의 정초가 되는 해였다.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기가 선거로는 20대 총선으로, 대중운동으로는 촛불로 표현되었고, 그 욕구는 다당제의 성립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에 벌어진 대선은 그런 부분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와는 별개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다양한 성향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가 있음이 드러났다. 생명, 안전이라는 목표를 안고 출발한 문재인 정권은 경주, 포항 지진, 어선 전복 사고, 부다페스트 유람선 참사, 강원도 산불, 코로나 사태에서 기민하게 대처하려 노력했다. 임기 중 열린 남북협상, 북미협상은 2016년에 열린 정치적 변화의 장을 가속시켰고, 그 결과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한편으로 이렇게 열린 정치적 장은 제도적 개혁 없이 지속될 수 없었고 양당의 구심력에 다당구조는 무너져갔다. 바른정당은 대부분의 의원이 보수본류로 돌아갔고 국민의당은 갈등 속에서 바른정당과 합당을 하며 대안신당과 분리되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 구도는 대안신당에서 나온 민생당, 정의당, 바른미래당에서 나온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으로 정리되었고 많은 의원들이 양대 정당으로 복귀했다. 선거제를 개편하고 다당제를 유지하려는 힘이 준연동형비례대표제 개혁을 가져왔으나 여러 제한 조건 속에서 불완전하게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괴뢰꼼수정당의 등장으로 무효화되었다. 양대 정당의 구심력 속에서 시민사회마저도 분열했고, 2016년을 열어재낀 당사자에서 정치적 이합집산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21대 총선 결과, 한국의 의회정치는 양당제로 회귀했고 상부의 의회정치가 하부의 시민사회를 좌우하는 구도로 굳어버렸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포스트 2014년을, 장기 2016년을 총결산하는 결과였다. 국민들은 구조적 변동이 없는 현실 속에서 생명, 안전을 추구하는 민주당식의 변화를 택했고, 동시에 정치적 다양성보다 여당의 승리를 지원함으로써 2016년 이후의 장을 닫고 안정을 추구했다. 안철수와 유승민의 중도 정치 운동은 사실상 생명을 다했고, 진보정당운동은 그 노동계급적 기반을 잃은 채로 위태롭게 서 있게 되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2020년은 또 다른 시대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압도적 다수를 이룬 민주당은 이제 서구 자유주의 모델의 기능부전이 증명된 상황 앞에서 완전히 새로운 발걸음을 떼야한다. 만약 민주당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성 모델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린다면 양당제 아래서는 2016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2014년이 남긴 교훈을 이번 성적표 앞에서 되새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