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중국혐오'와 '반일종족주의'를 넘어서 - 전환과 복고 사이

비내리는날 2020. 1. 30. 01:36

 올해 들어 퍼지기 시작한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 자릿 수이긴 하지만 환자가 발생했다. 50만에 가까운 청원자들이 청와대 온라인 청원을 통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두말할 필요없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의 표출이자 우리 사회의 혐오에 대한 취약성을 드러냈다. 어떤 이들은 "중국은 전통적으로 우리와 적대해왔으며 중국은 이미 강대국이고 사드 때처럼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이것은 정당한 분노이지 혐오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의 과거사와 어떤 상관도 없다(그들의 국가에 대한 불신 정도라면 모를까).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작년에 있었던 반일 불매운동 현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와 중국 국가에 대한 분노를 구분해야한다. 물론 민족(Nation)이라는 접점에서 둘을 칼 같이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기반한 냄새, 습성, 외모 등을 두고 차별하고, 어떤 사실에 있어서도 특정한 요소를 과장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것 등이 혐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중국 국가의 제국주의적 활동, 홍콩 시위에 대한 과격한 진압이나 각종 국내외적 부조리를 지적하는 것은 혐오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둘 사이에는 접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반공주의적 인종주의이다. 중국 국민들을 대체로 가난한 이미지로, 자신의 견해도 제대로 못 밝히는 '무리들'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단일하고 얼굴없는 숫자만 많은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 이것과 연결된다. 중국은 국가와 인민을 포괄해서 하나의 거대한 적대적인 통일체이며 우리는 숙명적으로 이들과 적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이상한 존재이고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력이다. 그것은 그들이 한미일의 자유민주주의에 적대할 수 밖에 없는 북중러의 공산주의 진영이기 때문이다.

 

 반일 불매운동과 중국에 대한 혐오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한국 민족주의 자체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언뜻 보아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이라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은 중국에 대한 비판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민족주의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함께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탄생한 민족주의는 해방과 함께 분단과 전쟁이 이루어지면서 반공주의와 혼재될 수 밖에 없었다. 저항적 민족주의는 억눌리고 한미일 대 북중소라는 구도 아래서 관제 민족주의는 기성의 민족주의와 반공주의가 틀어지지 않도록 반일의 외피만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민족주의는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동되었다.

 2018년부터 남북미가 참여하고 중국이 관여하는 협상이 진행되면서 기성의 한미일/북중러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이에 따라 두 가지 방향으로 민족주의적 에너지가 분출됐다. 하나는 반일 불매운동에서 보이듯이 그 동안의 구도에서 억눌릴 수 밖에 없었던 반일민족주의의 실천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성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새로운 담론의 등장이었다.

 

 후자의 담론이 바로 이영훈 류의 '반일종족주의' 담론이다. 이 담론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은 비이성적이고 문제가 있다. 이들은 기성의 한국 민족주의의 전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전제를 가진 담론을 형성하려했다. 저항적 민족주의든 관제민족주의든 간에 기존 담론의 전제는 1919년 3.1운동을 기초로 한국 민족주의가 탄생했고 그것을 정초로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우리 정체성의 근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들은 이를 부정하고 일제시대는 근대로의 이행기로,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민국가이며 반일은 샤머니즘적 종족주의라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기초로 한다는 국민국가 대한민국을 옹호하는 이런 담론은 일종의 대한민국주의 내지 남한민족주의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이들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이 텍스트 자체는 국내적으로는 박근혜 탄핵이라는, 국제적으로는 남북미 협상이라는 보수세력의 담론적 공백을 채워나갔다.

 

 즉, 지금 나타나는 혐중/반일의 정서는 2016년 이후로 벌어진 역사적 전환 속에서 탄생한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인 셈이다. 전자는 식민지근대와 냉전체제라는 이중의 체제와 기성의 민족주의의 충돌점을 해소시키고 재편성하는 힘이고, 후자는 두 체제를 탈피하려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혐오/비판, 일본에 대한 혐오/비판,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는 이렇게 전부 역사적으로 묶여있는 세트이다. 우리는 냉전체제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담론을 빌리지 않고도 중국을 비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야만 한다. 그러한 변화는 냉전체제에 기생한 보수세력과 그 물적 토대인 한국의 재벌체제의 해체를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 혐중과 반일의 문제를 단지 민족주의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총체성 속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