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김원봉 서훈 논란에 관하여

YH51 2019. 4. 27. 17:46

1.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화이트워싱의 의미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주인공을 원작 등과 다르게 백인으로 등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도 일본에서 흑은 혼혈인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광고에서 백인으로 등장시켜 논란이 된 바 있다.

 

2.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에 대한 훈장 서훈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의열단 등으로 알려진 김원봉은 사회주의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자는 다소 포괄적인 의미이다.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등을 포괄한다. 실제로 재일시인 김시종의 자전적인 기록인 조선과 일본에 살다(朝鮮日本生)에서 일제 하에서의 사회주의자라는 지칭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회천이 된 종전덕분에 나도 가까스로 그 사회주의자의 실상을 알게 되었는데, 식민지 통치에 맞선 사람들, 양심적인 민족주의자나 자유주의자, 농민운동가나 조합활동가, 나아가 기독교를 비롯한 각 종파의 신앙인들까지 뭉뚱그려 민중은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관헌 역시 이러한 사람들을 빨갱이라 부르며 검속하고 예비구금하고 감옥에 가뒀습니다. 나에게, 아니 내가 눈을 뜨기 전부터 수난의 민족사 속에서 사회주의는 정의의 확고한 근거지였으며 사회주의자는 그 사회정의를 짊어져리한 고난의 사도들이었습니다. p.120-121

 

 일제 하 조선에서의 포괄적인 사회주의자라는 의미는 단순히 조선 반도에서만의 특징은 아니다. 여러 국가들의 사례에서도 사회주의자는 주의자로 불리는 맑스-레닌주의자등과 같은 명확한 이념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체제의 저항자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맞는다. 이에 좌파 내부에서도 포괄적인 저항세력과 구분을 짓기 위해서 포괄적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 짓기도 한다. 이런 사회주의자라는 단어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에 박헌영, 이재유 등 조선공산당 출신의 주의자들 눈에서 보면 사실 김원봉은 이념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계열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의자들의 분류이고, 대중적으로 보았을 때에, 그리고 당시의 일반적인 민중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김원봉은 사회주의자이다. 또한 그는 과거 아나키즘적성향의 의열단을 지도하였고, 이후에도 단순 비타협 민족주의자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해방 이후 좌익들의 집결체인 민족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보로 보았을 때에도 그는 사회주의자이다.

 

3.

 하지만 김원봉의 서훈 논란을 두고 찬성하는 쪽에서 김원봉이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김광운 편사연구관은 "김원봉의 사상은 하나로 말하기 어렵다, 김구처럼 그의 사상도 시기별로 다 다르다"라면서 "그는 중국에 있을 때 국민당의 지원을 받았던 사람이다, 젊었을 때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만들 때 관여한 적은 있지만 공산주의자로 산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연구관은 그러면서 "약산은 민족해방과 통일·독립에 대해 포괄적으로 뜻을 뒀다"라며 "통일을 이루려면 남북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발굴] "김원봉, 남쪽으로 도주하고자 온갖 방법 사용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27384&CMPT_CD=SEARCH

 

 위의 기사에서 연구자는 김원봉이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는 사회주의자였지,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등이 말하고 싶은 것은 김원봉이 좌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원봉이 독립을 위해 좌익적 방법론을 선택한 것이지, 좌익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해방 이후에는 더 이상 좌익이 아니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4.

 오마이뉴스 등 김원봉 서훈 찬성자들의 이러한 방식의 김원봉 호명은 오히려 김원봉의 주체적 선택과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일제하 사회주의자 몇 명이 훈장을 받는다고 한다면 이 역시 한국 근대사에 대한 해석의 큰 후퇴이고, 이후 다양한 운동들의 운신의 폭을 줄이는 행위이다. 김원봉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독립을 위해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니 훈장을 서훈해야한다는 주장은 이후 역사전쟁에서 더 큰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몇 년전 대중적으로 흥행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면 군인들이 왜 광주를 공격하냐는 질문에 광주시민들은 우리도 모른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한다. 영화 자체는 광주를 알리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내용에서 위와 같이 광주 시민의 의식성, 주체성을 많이 희석시켰다. 당시의 광주시민들은 탄압에 대한 수동적 저항이 아니라, 전두환 군부 체제에 대한 대중적 항쟁을 전개했다. 또한 일반 민중의 더 나은 삶을 외치는 등 사회 전반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5·18은 단순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민중항쟁이다. 하지만 우파들의 온갖 공격에 갈수록 광주의 의미가 정치체제의 민주화로 축소되고 있다. 87년의 6월 항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6월 항쟁의 역사인 노동자 대투쟁은 갈수록 축소되고, 6월 항쟁의 의미는 6.29 민주화 선언까지로 축소되고 있다. 우파들의 공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전노협 사수를 위해 산화해간 한진중공업의 박창수 열사 등 세상의 변화를 열망했던 운동가들이 단순 형식적 민주주의, 대통령 선출제 등을 위해서만 싸운 사람들이 될 것이다.

 

5.

 우파들의 강해지는 역사적 공세에 우리는 역사 전쟁을 선언하고, 더욱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을 희석시켜 훈장을 주고, 현충원 등에서 그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택들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정신계승이다. 김원봉은 당당한 사회주의자이고, 훈장을 받아야 한다면 사회주의자의 행적으로 훈장을 받아야 한다. 적들의 낙인에 수동적으로 도망 갈 것이 아니라, 그래 우리는 사회주의자고, 공산주의자라고 선언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동조자들을 조직하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