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어느 비둘기의 죽음을 기억하며

비내리는날 2018. 9. 7. 19:00

 언젠지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골목의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한 쪽에 비둘기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곧이어 우회전하는 차가 횡단보도로 들어섰다. 비둘기가 도망가겠거니, 생각했는데 계속 그 주변을 맴돌았다. 차는 비둘기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아주 잠깐 멈췄던 차는 다시 속도를 냈고 도로 저 끝으로 사라졌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방금 전까지 자리를 맴돌던 비둘기의 사체가 놓여있었다. 그 잠깐의 순간에 살아 움직이던 비둘기는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찌부러져 깃털만이 날렸다. 사체는 하루 만에 치워졌고, 몇 주 뒤에는 그곳에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아마도 이 사건을 기억하는 내가 없어진다면, 그 장소에서 어떤 살아있는 비둘기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사실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무심히 그 자리를 지나다니는 차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어쩌면 그 운전자는 대단히 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우회전해 들어오면서 보행자와 다른 차가 있는지 보느라 비둘기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비둘기가, 살아 움직이던 새 한마리는 죽었고 뭔 짓을 하든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종종 책을 사기 위해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을 지날 때에도 늘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한 사람이 돌이킬 수 없게 되버린 그 자리에는 차들이 지나다닌다. 그 위를 지나다니는 차들을 원망해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 2015년 11월 14일에 벌어졌던 일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에는 그냥 평소처럼 차가 다니고, 보도블럭 위로는 사람이 다닌다. 그 자리에서 그 순간이 거의 온전히 되돌이켜진 것은 2016년 백남기 농민 추모행진 때 경찰이 재현해놓은 차벽 뿐이었다.

 기억은 되돌이킬 때마다 무뎌진다.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살아가다보면 기억은 흐릿해지고 무뎌지고 사라진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는 갈 곳을 잃어버린 감정만 남는다. 소위 '한의 정서'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시간과 장소와 기억의 연결이 끊기고, 기억하지 않기를 강요받을 때, 있을 곳을 잃은 기억은 사라지고 억압된 감정인 '한'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은 기억의 무덤이다. 어떤 생명의 상실이든, 산 자들을 살아야한다는 명목으로 저 멀리 추방당하고, 흔적은 오직 '무언가 있었지만 지워졌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도록 남는다. 전쟁과 학살, 대형참사로 인한 상실에서부터 우리 주변의 작은 상실들까지 일상에서 사라진다. 세월호 추모공원은 '산 자의 논리'에 밀려 언제 지어질지도 모른다.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도, 강남역 10번 출구에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도 거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흔적을 남기자. 흔적이 없다면, 흔적을 지우려 한 흔적이라도 찾아내 남기자. 필요하다면 이 땅을 거대한 공동묘지로라도 만들어야한다. 기억은 관념적이지 않고, 철저히 유물론적이다. 기억은 장소, 시간, 기록에 뿌리내려있다. 거기서 분리될 때, 기억은 머물 곳을 잃고 형해화된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같은 상실이 반복되고, '한'이 쌓이고, 이내 귀신과 괴담으로 흉흉해질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적이 승리한다면 죽은 자들도 그 적 앞에서 안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뒤집어, 죽은 자들의 계속된 패배 앞에 산 자들 또한 안전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어쩌면 나는 그 비둘기가 죽은 자리에 몰래 흔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기에 그저 자기 위안이겠지만, 누군가가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봐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