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주임원사와 동료병사들의 추천(?)으로 부대 내 상담관과 주에 한 번씩 상담을 하고 있다. 군대에 대한 일반적인 걱정과 편견과는 달리 상담관은 전문적이고 비밀을 엄수하며 나름 체계적으로 상담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당연히 상담 내용은 가깝게는 최근의 일들부터 멀리는 아주 어렸을 때의 일까지를 다루는데, 잘 나지 않는 기억을 쥐어짜내는 것도,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다루는 전문상담관이라는 직업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하는 것은 힘들까? 나는 왜 종종 상담관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발언들을 했을까? 나 뿐만이 아니라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제대로 말하기 힘들어해할까? 그러한 기억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해있었다는 듯이 불쑥 솟아오르지만,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비어있는 듯이 존재한다. 느낌은 분명하지만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적 기억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사건들에도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프리모 레비는 분명하게 아우슈비츠의 진짜 증언자들은 이미 죽었음을 말했다. 인간 이하로 몰아넣어진 사람들은 죽임당했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인간적 상태를 회복하고 나서는 금방 자괴감에 빠지고 증언을 거부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슈비츠의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진 기록이 남았지만, 인간 이하의 인간, 생존자들은 영상기록에서 의도적으로 회피되었다. 오늘날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사회적 참사에도 물질적인 흔적을 남기려하지 않고, 외부로 밀어내고 회피했다.
기억은 이렇게 한 개인 속에서, 혹은 사회 속에서 회피되고 '삶' 속에 잠겨버려야하나? 그 전에 트라우마적 기억의 회피가 가지는 의미를 따져보고 싶다. 너무 괴로운 것, 재현불가능한 것으로서의 기억, 늘 진위를 의심받는 기억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트라우마적 기억의 자기회피와 망각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 이 '비인간적인' 기억을 증언하는 것, 이 기억에 매몰되는 것만은 막고 싶다는 의지만큼 인간적인게 어디있겠는가. 즉, 트라우마의 회피는 분명히 인간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 유령화된 기억, 핵심이 비어있는 기억은 주변을 계속 맴돈다. 개인은 타고난 기질에 더해 타자와의 실천적 관계의 축적된 결과로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 성격을 통해 우리는 기억을 억압하거나 트라우마적 경험을 밀어낸다.
사회적 기억 역시 마찬가지이다.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대응은 축적되어 습관화된 사회적 반응을 만들어낸다. 일베나 다른 집단들의 사회적 참사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 역시 지난 수십년간 쌓인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상담을 통해 '치료'될 수 있을까? 치료따윈 바라지 않는다. 기억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성격은 20여년의 경험이 축적된 물질적인 결과이다. 그것이 단지 몇 마디 말이나 관념적인 방식으로 바뀔리가 없다. 다만, 앞으로의 내 실천에 대한 자극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억을 말하는 것이 쌓여있는 무언가에 대한 해소나 어떤 다른 기억의 실마리를 찾는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기억에 대한 다른 태도, 다른 실천, 그리고 증언은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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