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인생은 하나의 서사로 정리될 수 없다. 각자가 겪는 인생은 대체로 복잡다단하고 우연적이며 단절적이다. 오직 사후적으로만 거기서 어떤 인과관계나 서사를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후적으로 설정된 그 '서사'가 필요하다. 그 '서사'는 그 내용이 사실에 가까울지라도 근본적으로 픽션적이며 서사 이외의 사실들을 배제함으로서만 성립한다. 특히나 자기 서사는 왜곡, 오해, 미화, 자기기만을 거의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자기객관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인생 속에서 개인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서두에 자기 서사에 대한 우려들을 이렇게 쓸데없이 나열한 이유는 나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의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나와 '남성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남성성'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떤 보편적인 특성이 있지만, 남성 각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 과정은 다 다를 것이고 거기에는 단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타협, 변형, 새로운 '남성성'의 산출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러한 요소들을 찾아보고 싶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나의 묘사에는 왜곡과 배제가 있을테니 그러한 점들을 감안하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남성으로서 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나 '남성성'을 어느정도 체화하고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 '남성성'이라는 것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회적인 계급에 따라, 인종 혹은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런 조건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주류 '남성성'의 특징은 폭력과 관련이 있다. 스포츠, 전쟁 같은 것에 대한 애호, 과격하고 폭력적인 표현을 남성적인 것으로 여기는 인식 같은 것이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스포츠, 운동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만드는 것(종이접기라든가)이나 독서 같은 비활동적인 것을 좋아했고, 섬세함이 필요한 활동을 좋아했다. 부모로부터 남성적이지 않다(그러나 특별히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그래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친구 집에 놀러가서 축구하러 나간 친구 대신 친구 어머니와 꽃꽂이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즈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단지 '남성성' 부족으로만 생긴 문제였던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다소의 위기들을 겪고 나서 나는 전쟁, 무기, 폭력성 같은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기들을 보고 외우며, 전쟁 이미지에 열광하고, 나중에는 뭔지도 잘 모르면서 나치 독일이 연출한 폭력적이고 심미적인 이미지들에 심취했다(그들의 군복, 영웅서사, 전당대회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다). 남성성의 부족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내가 그러한 과잉된 남성성 기호들을 추구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려한 것 같다.
중학교로 넘어갈 때 쯤에는 본격적으로 이미지의 소비나 기호를 취하는 수준을 넘어서 남성성, 특히 그것의 폭력적 요소들을 직접 실천하고 내면하하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친구와 거의 매일 같이 싸움연습(?)을 했고 욕들을 배우고 하고 다녔다. 일부러 침을 뱉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들은 나에게 너무 맞지 않는 것들이었고 나를 지치게 했다. 점차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로 남성집단 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이미지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이미지, 남성 지식인의 이미지로서의 남성성이 그것이었다. (중학생 지식인이라니 웃길지도 모르겠지만)지식인 풍의 무리들과 어울리고, 뭔가를 계속 알고자 하며, 모르는 것에도 서투른 지식을 남발하고 다니기도 했다. 나의 남성성 재편과 협상의 과정은 중학교 내내 시행착오를 겪었고, 때로는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한 노력(?)의 성과인지 고등학교 때는 거의 아무 문제도 겪지 않았다. 그 때부터 위계화된 남성집단 내의 어느 집단들과도 잘 어울리고, 내가 지닌 자원과 이미지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더 이상 과잉된 남성성 기호나 폭력을 필요로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들과 멀어졌다. 노골적인 폭력을 오히려 나를 불쾌하게 했고, 전쟁 이미지나 무기들은 나에게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사회화'가 아닌가? '나'와 사회의 협상과 변화의 과정, 내·외면에 일관된 남성성의 정착과 남성집단 내에 안정적으로 내가 자리잡는 과정들 말이다. 이제 나는 남성성 기호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남성으로 사회화 되었다는 것의 의미다. 그러나 그 기원에는 (가해나 피해로 설명되지 않는)실천되고 경험된 폭력이 있다. 지금 내가 ('남성적'인)폭력과 관계맺지 않아도 되는 것은 내가 이미 그 기원으로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의 사회화는 결코 자연적인 과정이거나 성숙이나 계몽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강제적으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타협, 수정, 협상을 통해 젠더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타인들에게 인식 가능한 남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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