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경험이라는 것은 글로 정리해서 남기지 않으면 어떤 감정의 뭉치로 남게된다. 그런 감정의 뭉치는 공감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만, 어떤 억압, 불만,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남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물론 이 글은 단순히 내 경험에 대한 썰풀이가 아니라 타인의 분석들을 틀로서 내 경험을 설명하고자 한 하나의 시도이고, 그래서 내 경험을 내 스스로 사상화한다거나 하는 거창하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나에게 그럴 재능이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처음 훈련소와 맞닥뜨렸을 때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조교들의 위압적인 태도나 낮선 환경이 아니었다.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들어온 온갖 군대 이야기들이었다. 당연히 '말로만 들어온' 그 훈련소로의 입소와 거창한 입소식 이벤트, 가족과의 단절은 나를 위축되게 했다. 이렇게 긴장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신체검사 등이 끝나면 처음 배우는 것은 걸음걸이와 기초 제식이다. 처음에는 큰 걸음이라고 팔을 눈 높이까지 치면서 걷는 방식을 강제한다. 그와 함께 이동할 때에는 항상 직각으로 선에 맞춰서 걷는 직각보행을 실시한다. 또한 모든 일정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착오없이 진행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일련의 규율들은 신체를 규율화하고 행동을 강제하므로서 효율적인 기계로서의 인간을 창출한다. 물론 그러한 '생산'은 순응하지 않는 자, 부적응자에 대한 가차없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폭력을 가하므로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그 다음 주부터는 바른걸음이라는, 팔을 45도 정도 치면서 걷는 비교적 정상적인(?) 걸음걸이로 지내면서 다음 훈련 과정을 진행한다. 화생방, 유격, 사격, 행군 등등이 착착 치뤄지고 지루한 수업들을 다 끝낼 때 쯤이면 조교들의 표정도 왠지 밝아보이고 웬만한 얼차려는 추위나 더위 같은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사소한 괴로움 정도로 느껴지게 된다. 마침내 6주 훈련을 마치고 수료할 때에는 모두들 행복해하고 나름 보람찼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잘 짜여진 폭력적 훈련 시스템의 경험은 살면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런 고난들을 극복하고 수료외박을 맞는 경험은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동조차,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보면 오랜기간 계획되고 의식, 무의식적으로 짜여진 훈련소의 의도 하에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겪기 힘든 고난과 그 극복의 서사는 하나의 잘 유도된 카타르시스로 다른 훈련소의 폭력적 경험에 달라붙어 군생활 이후로도 이어질 순종적 인간형의 그림자로 남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비단 군복무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한국의 학생들이 유사 훈련소로서 초중고등학교 때 수련회, 극기훈련, 해병대캠프를 겪는다. 나의 훈련소 생활에서도 불쑥불쑥 수련회의 기억과 경험이 체감으로 솟아오를 때가 있었다.
훈련소의 경험이 생산해낸 것은 복종하는 인간, 기계로서의 인간 뿐인가? 집단생활 속에서 얼차려는 대단히 부조리하게 내려지는데, 개인의 책임인 사소한 일탈행위들(눈동자 움직임, 몸의 움찔거림, 기침 등등)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생활하는 동기들의 행동들 역시 집단 책임으로서 얼차려로 돌아온다. 결국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기의 일에 자기책임으로만 살아온 개인들은 잘하든 못하든 처벌받는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개인들은 서로를 '보살피고' 감시하게 된다. 나의 행동과 처벌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부조리한 간극에는 국가가 파고든다. 이해불가능한 부조리라는 간극은 그 자체로 체감되는 국가, 체제, 구조이다. 조교들은 폭력의 정점에 있는 국가의 가장 아래 손발이다. 훈련소 시스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부조리함 속에서 저항불가능, 패배감을 새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도미야마 이치로가 만든 개념 중에 '폭력의 예감'이라는 것이 있다. 간토대지진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을 바라보며, 조심해서 조선인으로 오해받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말한 오키나와의 선생의 말, 아직 죽지 않은 채 폭력 앞에 노출되어 이미 죽은 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바로 그 감각, 시선이 '폭력의 예감'이다. 여기서 우리는 폭력 앞에 놓인 자들의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과 굴복과 협력의 계기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훈련소에도 그러한 '폭력의 예감'을 볼 수 있다. 잘 적응하지 못하고 군대와 불화하는 개인들을 보면서, 그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많은 얘기들이 오간다. 그런 부적응자들은 지루하고 긴장되는 훈련소 생활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동시에 거기에는 어떤 불안이, 우리가 부적응자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 한 방울이 담겨져있다.
마치 극복할 수 없는 듯 보이는, 국가가 독점한 폭력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국가에 맞는, 시대에 맞는 인간을 창출하는 공장으로서의 훈련소를 극복할 가능성은 있는가? '폭력의 예감'이 저항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훈련소에 맞닥뜨린 우리들의 행동, 소근거림, 순응, 반항, 즐거움, 공포 그 모든 것에 극복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훈련소의 '괴담'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밤의 훈련소는 괴담의 공간이다. 거기에는 항상 폭력과 고립 속에서 죽어간 자살한 훈련소의 유령들이, 다치고 결국 죽은 훈련소의 유령이 있다. 화장실에서 목을 매었다는 유령, 다리 한쪽이 다쳤다는 유령. 이런 유령들에 대한 목격담과 넘치는 이야기들과 그들에 대한 공포와 동정에는, 부적응에 대한 두려움과 부적응자에 대한 동정이 유령 이야기라는 형태로 담겨있는 것이다. 비록 대놓고 그런 감정들을 드러낼 수 없지만, 유령이야기라는 형태로, 또는 자살 소문, 부상자와 낙오자에 대한 소문으로 웅성대는 것이다.
왜 경험은 마음 속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으로써, 글로써 남아야하는가. 지금까지 군대의 부조리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 군인들에 대한 동정은 사회적으로 공감받는 이야기들이 되어왔다. 그러나 집단심성으로서의 군인들의 억울함, 또는 수평폭력으로 이어지는 정념들, 뭉뚱그려진 경험들 속에 개개인의 각각의 이야기들이 생생함을 가진 채로 남아야만 그런 부조리한 문화를 내적으로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각의 독특한 경험들이 하나의 집단서사로 종속되고, 단지 군필자들끼리의, 현역들끼리의 공감대 형성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 아니라 내적 극복, 작은 저항을 위한 계기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쓰고, 말해야만한다.
- Ps.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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