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코로나19 주저리 주저리

YH51 2020. 8. 2. 17:28

 모든 것이 멈췄다. 코로나19(Covid-19)는 모든 문제의 만능 열쇠인줄 알았던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생명을 담보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방역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 것이 통제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개인의 취미생활부터 이동경로, 결제내역은 물론이며 ‘시민’들의 사회적 의사표시를 위한 집회·시위 등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기존에도 절제 없이 방대했던 행정 권력은 코로아19 상황 앞에서 훨씬 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하였다. 행정 권력은 발전된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을 더 강하고 치밀하게 감시·통제하기 시작했다. 방역 권력의 등장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나 역시 몇 달 전의 영상들을 보며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공연장에서 음악을 즐기고, 광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거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감각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 이전의 우리 사회는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되는 사회이다.

 

 코로나 전을 돌아보자. 여전히 그러하지만 우리는 말도 안되는 삶의 방식을 견디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제대로 설수조차 없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해야하고, 다닥다닥 붙은 작업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긴 시간을 일했다. 자신 또는 가족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놓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각자의 작업장에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오히려 자기 의견을 내는 번거롭게 한다며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하였다. 유일한 삶의 낙은 소비였다. 소비조차도 여유 속에서 이뤄지지는 않았다. 퇴근 후 배달앱을 통해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였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협 요소를 근원적으로 제거할 것인가? 가령 콜센터의 노동은 코로나 상황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1339 콜센터, 병원 등에서 필수적인 노동이 되었다. AI가 발전하고, 모바일 등을 통한 응대가 아무리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이 직접 상황을 인지라고, 판단하는 것이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기계적인 삶을 벗어나 인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적절한 노동시간, 안전한 작업장, 그리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삶과 자신을 충분히 재생산할 수 있는 여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삶의 양식이다.

 

 재난은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당면한 기후위기 등 인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전기 생산 방식 전면의 변화와 절대적 에너지 소비량의 조절 없이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한다고 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은 과거와 같은 삶이 아니다. 도래한 위기와 삶의 형태의 변화를 누가 어떻게 주도하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