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인권'이 향해야 하는 것
오늘 날, 군 인권의 존재가치 자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민주화 이후 군대 역시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받았고, 다른 집단들에 비해 매우 느리지만 어느 정도 군 인권이라는 것이 자리잡게 되었다(물론 그 과정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우리는 2010년대에도 벌어졌던 끔찍한 군내 폭력에 의해 살해사건, 총기 난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꽤 큰 부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에는 전문상담관이 존재한다. 화장실마다 인권침해 등을 신고하는 번호가 붙어있고, 상급부대부터 하급부대까지 신고체계가 자리잡혀있다. 실제로 다소의 평판(?)만 내려놓는다면, '이런 것까지?' 싶은 정도의 인권침해도 신고, 처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권 군대'에서 살게 된 것일까?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군 인권을 요구하게 만든 군 내 인권침해, 폭력의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한다. 어느 집단에나 폭력의 문제는 있지만 군 내의 폭력 문제는 특수하다. 근대 국가에서의 군대 자체가 사회의 합법적인 폭력독점 기관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있어서 국가, 특히 군대는 그 국가 단위 내에서 다른 단체들과 경쟁을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군대의 목적이 '적'과 싸우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상명하복, 철저한 규율이 요구된다. 이런 곳에서 폭력은 일상적일 수 밖에 없다. 예민한 인권 감수성은 이 집단의 유지를 위협한다. 폭력을 거부하고 적을 죽이지 않는 군대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상담, 신고시스템, 군인권은 마치 현대의 '친환경 축산' 같지 않은가? 근대 산업체계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조건 하에서 축산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내야하는데, 이로 인한 환경파괴라든지 동물권문제라든지 다방면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공장식이 아닌 '친환경', '방목형' 축산이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축산을 둘러싼 근본적인 조건에는 변한게 없다. 다소의 환경과 품질이 달라졌을 뿐이다. 군대 역시 다를게 없다. 근대국가의 군대라는 조건, 국제관계와 전쟁이라는 조건은 변한게 없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체제라는 조건은 '적'을 강하게 규정한다. 이 조건들이 바뀌지 않는 한, 군 인권은 '병주고 약주고' 식의, 대증치료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군 인권'의 칼 끝이 군대 자체, 우리를 둘러싼 조건 자체로 향해야만 근본적인 인권의 확보가 가능하다. 여기서 잠시 '친환경 축산' 얘기를 끌어와보자.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육류의 섭취가 불가결해보인다(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군대 역시 국가에게, 사회에게 있어서 필요불가결하다면, 군대 자체를 없앨 수 없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축산 얘기를 끌어오자면, 우리는 근대 산업체계 하에서 추상적인 생명으로서의 동물 이미지와 우리가 먹는 고기(즉, 동물의 시체!) 사이의 기르고 죽이는 과정을 분리시켰다. 그 과정에서 동물에 대한 책임감(과 다소의 죄악감)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폭력의 문제를 국가와 군대에 전가하면서 추상적인 전쟁 이미지와 구체적인 현실 사이의 과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가 회복해야하는 것은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과정 자체이다. 또 하나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군 인권'을 급진화시켜 시스템의 자기 회복 기능이 아닌, 내적 폭력의 문제를 계속 문제화시킬 수 있는 갈등과 불화의 지점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 불화 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인권과 군대의 최소한의 균형지점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