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민식이법을 둘러싼 담론의 구성

비내리는날 2019. 12. 11. 00:14

 최근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이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나는 그 구체적인 내용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미 가치판단이 끝난 상태거니와 사실관계를 논하자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민식이법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등장했고, 또 부정적인 담론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설득력을 가지고 퍼져나갔는지를 다루고 싶다.

 

 먼저 민식이법은 2019년 9월에 있었던 김민식 군의 사고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법의 주요 골자는 스쿨존 내에서 무인단속기 및 어린이 보호시설을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것과 논란이 된 스쿨존 내에서의 교통사고에 대한 가중처벌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이 등장한 것은 이전이나 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 법이 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와 연관되어 쟁점화되었을 때부터였다. 일부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1. 민식이 사고는 30km 이하의 속도를 지켰고, 아이가 튀어나온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의 책임이 없다.

2. 스쿨존 내에서 설사 사고를 냈다 하더라도 최대 무기징역에 이르는 형사처벌은 과도하다.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담론의 형태는 세월호 참사 때와 유사하게 퍼져나갔다. '유가족', '감성팔이', '팩트'라는 단어들이 다시 등장했고 구체적으로 23.6km/h라는 수치가 인용되었다. 아이 잃은 부모에 대한 보편주의적 정서라는 담론으로 처음 이슈화되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 쟁점화된 것은 정치적인 사건과 연관되면서 법안의 특정 부분과 사건의 일부 부분만이 강조되었다. 가령 사건 전말에 횡단보도에서 정지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스쿨존 내에서는 원래 운전자가 더 주의해야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무시되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이들'때문에 '억울하고 과도한 처벌'을 운전자들이 받는다는 식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담론적 전환은 사건의 책임자를 운전자에서 어린아이로, 피해자를 어린아이에서 운전자로 전환시켰다. 여기서 '어린아이'라는 단어는 이전에는 보편주의적인 안쓰러움의 정서를 불러왔다면 이번에는 노키즈존, 맘충 담론에 쓰이는 통제가 되지 않는 문제 아이라는 인식을 불러왔다.

 구체적인 수치의 인용, 23.6km라든지, 무기 및 3년 이상의 징역,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라든지 하는 수치의 인용은 이전의 보편적인 정서로 뒷받침된 진실담론을 '팩트'로 깨고, '팩트' 기반의 진실효과를 낸다. 계량화, 수치화,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 보편적인 정서, 도덕, 윤리보다 우위를 가지는 현재 한국의 담론구조에서 담론이 뒤집히는데 큰 효과를 보인다. 또한 징역형의 구체적 수준을 거론하면서 사실상 해당사항이 없을 대다수의 사람들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운전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서 과장된 공포를 유발한다. 공포의 담론은 사람들을 운전자의 자리에 놓이게 하고 곧 '억울한 피해자'를 느끼게 만들어준다. 부정적 담론이 빠르게 퍼질 수 있던 것에는 마치 테러와도 같은 공포의 전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부정적 담론화에 있어서 하나는 '팩트주의', 다른 하나는 '피해자화의 확산'이 담론확산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전자를 통해서 일반적인 담론이 가지는 도덕적 성격을 퇴색시키고 후자를 통해서 공포심의 과잉을 유도해 빠르고 효과적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체적으로 분해되고 재조합되고 이야기되고 파급효과에 대해 논의되면서, 담론적 분석대상이 아니었던 민식이법 담론이 계속 쪼개지고 불일치하면서 형태는 다양하지만 방향성은 단일한(민식이법의 부정이라는) 담론들로 변화되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앞으로도 어떤 담론이 쟁점화되게 된다면 분명히 이런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집단이나 세력에 의해 담론이 재구성되고 퍼져날 것이다. 이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