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기술만능주의 그리고 총파업
최근에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요구 집회가 열렸다. 올해에는 유럽에서 이상고온이, 동아시아에서도 이상고온과 장마 주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태풍이 연이어서 고위도로 올라오고 카리브해에서도 대형 허리케인에 큰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나왔다. 인도에서도 이상고온으로 백여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고위도의 인구가 밀집되어있고 개발된 국가들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닥치자 국제적으로 이에 대한 반향이 일었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행동의 문을 연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9월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강한 어조로 무책임한 각국의 정상들을 비판했다. 확실히 이미 지구의 기후변화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건널 것으로 보인다. 기온은 계속 오르고 탄소배출량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미 이산화탄소 포집기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원하는 농도만큼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가시적으로는 여름철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고,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더 이상 '영구'가 아니게 되었다. 두꺼운 얼음층이 녹으면서 매장되어있던 메탄이 배출되면서 기후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일련의 '기술만능주의'자들은 기술개발을 통해 이를 억제하고 해결할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최악을 맞는다고 해도 적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에도 화성을 살 수 있는 환경으로 개조할 수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실제로 그러한 발상을 이미 현실로 구현해놓은 경우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마스다르 시티는 태양광,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만 운영되도록 설계되어 사막 한가운데에 건설 중이다. 효율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전자기기 없이도 냉난방을 조절하며 개인 자동차 대신 PRT라고 하는 개인궤도자동차를 이용해야한다. 이러한 컨셉의 도시를 사우디 등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이런 방법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도시생활을 누릴 수 있을 수 있다는 기술만능주의자들의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류는 2차대전이든 쿠바 미사일 위기든 항상 최악의 경우를 피해오지 않았나?
그러나 이런 기술의 환상에는 위험의 징후가 숨어있다. UAE의 마스다르 시티나 사우디의 NEOM 같은 친환경 계획도시들은 철저한 독재와 통제 속에서 사막 위에 설치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철저한 계획도시들이 복잡다단한 실제 인간의 삶에 맞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 기술만능주의자들의 나이브함이 실제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결국에는 기술이 다 해결해줄 수 있다, 여차하면, 항상 인간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 극복해왔으니까, 라는 낙관주의와 무책임함이 기술만능주의에서 드러난다. 이들이 추동하는 기술발전은 이념과 정치가 죽은 시대에 유일한 '해결책'으로 우뚝 서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이전 시대처럼 모두에게 돌아갈지(실상, 우리는 수세식 변기도 없지만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특수계층에게 돌아갈지는 알기 어렵다. 최근 인기를 끈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다가올 시대의 기술이 자기 자신의 근본을 바꿔버리는, 인간 너머로 가게할 기술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이 특별히 모두에게 돌아가리란 법이 없다는 것 역시 언급했다. 그의 주장을 과장으로 여긴다할지라도, 특정 기술이 생과 사를 구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합당해보인다.
이런 비관적 전망과 낙관적 기술만능주의 사이에서 어떤 전망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이번 기후변화 직접행동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기후파업이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후의 재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체제가 그것을 멈출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신이 폭주하는 기차와 같은 지구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 또한 또 하나의 폭주하는 기차로, 정치가 죽은 시대에 '자율주행'하는 기관차 자체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총파업을 불러와야한다. 총파업은 단지 저항의 모션이 아니라 우리가 폭주하는 문명을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하나의 행위이다. 멈춤으로써 우리는 모든 결정권과 통제권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그리고 멈춤의 지점에서 새로운 가치관, 정치를 정립함으로써 기후문제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까지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총파업이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기술만능주의가 주장하는 성과보다도 의문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총파업에 대한 상상 속에 실제 삶 속의 정지들을 결합하면서(가령, 완전히 다른 층위처럼 얘기되던 개인의 절약과 환경보호와 기후변화를 위한 파업에 이르기까지), 정지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서 스스로에 의한 스스로를 위한 기후변화 행동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