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

한국에서의 민중운동과 기독교 정신

비내리는날 2018. 9. 3. 16:44

 미군정, 이승만 정권과 전쟁으로 연이은 탄압과 학살로 식민지 시기부터 이어져오던 좌익과 민중운동의 연계는 거의 완전히 소멸했다. 그럼에도 조봉암 등의 반공좌익, 민주당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각각의 방향에서 이승만 정권과 싸웠다. 그리고 그 결과가 민중의 직접행동과 연결되어 4.19혁명으로, 이후에는 한일협정반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잔존 좌익들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북한과, 또 일본의 좌익과 연계하여 활로를 찾고자 했지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강한 탄압으로 좌절했다. 그 시기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과 강하게 결합한 것은 기독교였다. 무교회주의자 함석헌, 기독교장로회 목사 문익환, 카톨릭 원주교구장이자 주교인 지학순 등 소위 재야의 거물들도 기독교 지도자들이었고, 70년대 민주노조 운동같은 경우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과 강하게 결합했다. 이들은 학생운동 세력과 야당 지도자들의 접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의 운동 참여에 있어서 인적 결합보다 주목하고 싶은 점은 기독교 정신과 민중운동의 관계이다. 한국에서도 안병무 등이 민중신학을 주창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난 해방신학 역시 민중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기독교가 민중운동에 강하게 결합할 수 있었을까.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신학이 지금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표징을 발견해야하며 정교(Orthodox)가 아니라 정행(Orthopraxis)을 해야함을 강조했다. 이론이나 개인적 믿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실천을 통해 믿음을 실현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뒷받침해주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초기의 예수운동이 가졌던 의미와 70-90년대 민중운동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유대신학자 야콥 타우베스는 말년의 강연에서 예수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당대의 제국 로마의 법에 의해 살해당한 자가 하나님에 의해 부활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제국의 법을 부정하고 그 희생자를 구원한 반제국주의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좋은 소식"은 제자들과 바울을 통해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육(肉)으로 부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서신들에서 그는 에클레시아(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바울은 종말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고, 비유대인들, 모든 억압받는 자들에게 빨리 이 소식을 전하고자 로마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이 사건들과 사건 이후의 예수운동은 한국에서의 민중운동과 닮아있다. 강력한 독재정권, 친일과 반공주의만을 전하는 썩은 교회, 그들에 의해 탄압당한 수 많은 열사들. 하나님이 그렇듯이 민중 전체는 수 많은 의지, 위치, 맥락, 정체성과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무엇을 바라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사회 속에서 솟아오르는 듯 한 사건들 속에서 그 표징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예수로서 성육신(成肉身)하였듯이, 당시의 투사들은 민중의 응집된 의지로서의 전위였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그 시대의 억압된 자들의 응집을 보았듯이,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에서 이 사회 전반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살해된 열사들은 민중의 몸짓 속에서, 우리의 호명 속에서 "부활"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는 이 지점에서 완전히 부정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문익환 목사의 이한열 열사 추모식 연설이 아닐까>


 그리 먼 과거가 아니라 당장 2016-17년의 촛불항쟁에서, 처음에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시작한 집회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어 희생자들을 형상화한 고래가 인파들 위로 띄워졌다. 이것이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부활이 아닌가. 박근혜 정권은 산 자들과의 싸움으로 죽은 자들마저 지워버리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투쟁과 국민적 저항 속에서 죽은 자들은 산 자들과 함께했고, 민중들의 몸짓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저항적 성격, 의미를 퇴색시키고 침식한 것 역시 기독교였다. 식민지 시기부터 지배자에 협력해온 주류 기독교는 생명을 영(靈)이 아니라 육(肉)의 의미로 보았다. 91년 5월 투쟁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열사들을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을 것이다"라며 비난한 것은 서강대 총장이자 카톨릭 신부인 박홍이었다. 오늘날에도 소위 보수 기독교인들은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낙태에 반대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이어나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던진 투사들을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비난하고 있다. 


 오늘날 보수 기독교의 퇴행적이고 개인적이며 근본주의적 행태들은 눈살을 찌뿌리게 하지만, 현대 한국의 민중운동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과 정신, 의미와 힘은 비기독교인이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시대가 밝아오자마자 그 힘을 잃어가는 민중운동과, 점점 심각해져가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라는 이중의 문제 앞에서 기독교의 경험은 여전히 소중한 참조대상이 아닐까.